[투석실 이야기] 가장 취약한 시간
고령의 환자분이라도 투석 치료를 받으시면서 안정적으로 잘 지내시던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안정적으로 보이더라도 순식간에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낙상'입니다. 고령의 투석환자분은 뼈가 약하시므로 어떠한 이유로든 넘어지거나 다치면 골절이 되기 쉽습니다. 만일 골절이 되었다면 거동이 힘들어지고 누워있어야 하므로 여러가지 합병증 위험이 증가합니다. 누워만 있으니 흡인성 폐렴이 생기기 쉽습니다. 위장운동도 저하되니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변비가 생기기 쉽습니다. 또 근육을 사용하지 않으니 근력이 더욱 약화되어 골절이 치료되었다고 해도 거동이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오래 누워계시니 욕창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저귀를 사용해야 한다면 요로감염이 생길 수 있습니다.
투석 환자분 중에서 갑작스럽게 낙상하여 다치신 분들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가장 빈번하게 낙상이 일어나는 위험한 순간은 바로 투석을 받은 직후 시간대 입니다. 아마도 낙상에 가장 취약한 시간일 것입니다. 따라서 투석 후에는 절대로 서두르시면 안됩니다. 천천히 이동해야 하며, 뭔가 어지럽고 이상한 느낌이 든다면, 바로 주저앉으시거나 벽에 기대어 자세를 낮추고 충분히 쉬었다가 이동해야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몇 가지 낙상 케이스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적어봅니다.
투석이 끝나고 난 뒤
투석은 체내 잔여 수분을 빼내는 과정이므로 투석 중후반에 혈압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또 투석 후에도 혈관 내 수분이 빠져나간 상태이므로 갑자기 일어서거나 자세를 바꾸었을때 갑작스럽게 혈압이 떨어지는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기립성 저혈압이 생기면 순간적으로 뇌로 들어가는 혈액의 양이 줄어드므로 순간적으로 앞이 캄캄해지면서 의식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순간적으로 다치기 쉬우므로 가장 조심해야할 순간입니다.
#1.
60대 남성분입니다. 혈압과 당뇨를 오래 앓으신 분으로 혈관의 탄력이 떨어지고 자율신경계 기능이 망가져 평소에도 기립성 저혈압이 종종 있었던 분입니다. 투석을 마치고 혈관 지혈을 확인한 후 침대 옆 신발을 신으려 일어나는 순간 심한 어지럼을 느끼고 앞으로 고꾸러 졌습니다. 옆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혔고 두피에 4cm 가량의 열상이 생겼습니다. 두피는 혈관이 많은 조직이라 출혈이 꽤나 있어보였습니다. 지혈을 시도하면서 바로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2.
50대 남성분입니다. 주말 2일을 보내고 오신터라 체중이 평소보다 많이 늘었습니다. 주말에 행사가 있어서 그런지 특히 더 체중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평상시보다 투석할 때 체중을 더 많이 뺐습니다. 투석 마지막 혈압이 100 초반으로 낮았지만, 큰 문제없이 투석을 모두 마쳤습니다. 투석 후 지혈까지 모두 다 마친 후 마지막 단계는 최종 몸무게를 재는 일입니다. 체중계까지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약간 비틀거리며 어지럼을 느낍니다. 체중계 위에서 체중을 재는 동안 심한 어지럼을 느끼고 몸이 뒤로 기울어집니다. 체중계 손잡이를 잡으려고 하지만, 간만의 차이로 놓쳤습니다. 중심을 잃고 머리와 몸의 상체가 뒤로 넘어갑니다. 옆에서 쉬고 있던 다른 환자분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뒤에서 넘어지는 환자를 받아냅니다. 다행이 다치진 않았지만, 실제로 넘어졌다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3.
70대 여성분입니다. 당뇨를 오래 앓으셔서 혈압을 잡아주는 자율신경계 기능이 많이 떨어지신 분입니다. 예전에도 집에서 순간적으로 실신을 하여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투석을 다 마친 후 1층으로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갑니다. 50미터 앞에서 친한 다른 환자분이 빨리 오라며 손짓을 합니다. 조금 더 빨리 움직이려고 발을 내딪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어지럼을 느끼면서 쓰러졌습니다. 뒤로 넘어지면서 팔로 땅을 짚었는데, 그만 팔꿈치 부위가 골절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 깁스를 하고 투석실로 다니셨습니다.
#4.
60대 남성분입니다. 고혈압, 당뇨가 있으신 분이고 과거 심근경색으로 스텐트 시술도 받으셨던 분입니다. 투석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큰 길가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합니다. 마침 신호등의 불이 초록불로 바뀌었습니다. 조금만 속도를 내면 건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뛰듯이 걸어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건너자 마자 갑자기 어지럼을 느끼면서 의식이 혼미해지며 쓰러졌습니다. 잠깐 의식을 잃었다가 금방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눈을 떠보니 주변에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119 신고를 해주겠다고 병원에 가보시라고 하지만, 본인은 괜찮다고 한사코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