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닥터 2024. 6. 26. 11:43

#1.

얼마전 PD 수첩에서 의대증원사태와 관련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두개골 조기 유합증으로 제 때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아가 있었는데, 수술이 무기한 미뤄졌고, 환자의 부모는 발만 동동 구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피해 구제 센터에 피해 사실을 접수하였으나, 변호사를 소개해 줄 테니, 병원을 상대로 소송하라는 답변 뿐이었습니다. 환아의 부모가 진정으로 바랬던 것은 소송이 아니라 아이를 치료 할 수 있는 실제적인 방안이었을 것입니다.

 

#2.

지금으로부터 약 10년전, 내과 전공의 처음 트레이닝을 받을 때도 가장 먼저 들었던 것이 방어진료 였습니다. 검사를 권유했는데 거절하면 꼭 의무기록에 남겨두라는 선배와 교수님들의 조언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냥 "환자가 검사를 거부했다"고만 짧게만 남기면 안됩니다. "충분한 설명을 하였고 환자는 이해하였으며, 계속 설득을 반복하였음에도 검사를 거부하였음." 등으로 설득하는 과정과 내용도 적어야 한다고 교육을 받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방어를 위한 문구는 점점 길어져 오히려 꼭 필요한 핵심적인 내용 보다 길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소송에 대비한, 방어를 위한 기록을 충분히 길게 적어야합니다. 반드시 시간을 쪼개서라도 적어둬야 합니다. 적지 않거나 대충 적어서 판사로 하여금 "주의 의무" 와 "설명 의무" 를 다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면 안되니까요.

 

#3. 

중년의 환자분이 내원하였습니다. 등에 조그만 발진이 몇 개 있었습니다. 대상포진일까 걱정된다고 내원했습니다. 통증이 없어 아무래도 대상포진이 아닐 것 같다고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대상포진이란 병은 주로 임상적으로 증상만 보고도 진단할 수 있는 병이고, 대상포진 약인 항바이러스제는 신부전, 뇌병증 등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종종 경험합니다.) 좀 더 확실해지면 약을 드리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수 시간뒤 병원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왜 아까 대상포진 약을 안줬냐고. 가족들과 상의했는데,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갑자기? 정말 시간들여 성의껏 설명을 드렸는데...

 

#4.

40대 젊은 환자분입니다. 다른 병원 진료를 받고 있으셨으나 병원을 옮기고 싶다 합니다. 마침 혈액검사 할 시점이 되어, 검사도 같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검사 결과가 있어야만 약을 보험으로 처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몇 일 뒤 검사결과를 확인하러 내원하였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들어보니, 지난 번 검사 때 혈관을 잘 찾지 못해 바늘을 3~4번 찌르고 겨우 검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날 너무 통증이 심했는데 검사 비용 3만원을 어떻게 그대로 다 받을 수 있냐고 합니다. 물론 바늘을 여러번 찌르면 매우 짜증스럽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찌르지 않고서는 혈액채취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다음에 최대한 조심해서 하겠다고 잘 말씀드렸습니다.

 

#5. 

오랜만에 내원 하신 중년의 환자분입니다. 감기약을 처방받고 싶어 오셨습니다. 특히 기침이 심하다고 매우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저도 과거 코로나 걸린 이 후 기관지염, 부비동염 합병증으로 인해 기침이 심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얼마나 괴로우셨을까. 빨리 기침을 낫게 해드려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기침약을 조금 강도 있는 약으로 드렸습니다.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라면 이정도 약은 먹을 것 같어. 너무 괴로우니까.' 단, 기침약을 쓰면 간혹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변비가 생기는 부작용이 있어 항상 여쭤봅니다. "소변은 잘 보시지요?, 지금 변비는 없으시지요?" 이 질문에 특별히 문제 없으신 분께만 약을 드립니다. 1주일 뒤, 약이 다 떨어졌을즈음 다시 내원하셨는데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 약을 먹고 변비가 생겨 고생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원망을 하셔서 무척이나 난처했습니다. 약제 부작용은 예측이 불가하고 어떤한 약이든 치료효과 외 다른 부작용 (用, 부작용의 부자는 "아니부" 자가 아니고 "버금부" 자로 절대 생기면 안되는 작용이 아닌, 부차적인 작용을 의미하지만...) 이 있지만,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너무 원망을 많이 하시네요.(ㅠㅠ) 최근에 진료실에서는 약간의 약물 '부작용' 도 절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의 분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면, "약의 효과가 적더라도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으로 쓰는 것이 낫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6. 

맥페란 사태로 시끄럽습니다. 맥페란은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사용가능한, 사실상 유일한 항구토주사제의 이름입니다. 추체외로에 대한 부작용이 있어 고령의 환자, 파킨슨병이 있는 환자의 경우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고 교과서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 진료실에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수십차례 구토, 구역을 겪으며 내원하는 분께 단지 위험하다는 이유로 아무 조치를 하지 않기에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구토를 계속하는데, 경구약을 드시라고 하기도 힘들고, 잘못하면 흡인성 폐렴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내가 저런 상황이었다면 너무 괴롭겠지. 부작용이 생길 확률은 있겠지만 극히 적은 확률일 뿐더러, 당장 너무 힘드니 저용량의 맥페란 주사를 드리자.' 라고 생각하고 고령임에도 조심스럽게 주사를 드렸던 적이 종종 있습니다.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지나갔으나, 이번 사태는 좀 다릅니다. 환자분이 맥페란 주사를 맞은 후 일시적으로 파킨슨 병의 증상이 악화되어 소송을 건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파킨슨병인지 고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원에서는 병력청취의 의무를 소홀히 했다고 의사의 책임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맥페란 주사를 사용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맥페란 주사는 매우 값이 저렴한 주사인데, 사용량이 전국적으로 급감하면, 제약회사 입장에서도 이익이 안남기 때문에 제조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사용가능한 항구토 주사제는 없어지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