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_투석실 이야기

[투석실 이야기] 걸핏하면 약이 품절이란다.

손닥터 2023. 11. 9. 18:00

 

 

 

 

투석환자분들은 신장으로 약물의 배출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약 종류와 용량을 신중하게 선택하여 처방해야 합니다. 따라서 투석하시는 분들에게 처방하는 약의 종류는 제한적입니다. 아무약이나 다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새 약을 처방하면 심심치 않게 듣는 말이 있습니다. "약국에서 전화왔어요. OOO약 품절이에요. 다른 약으로 처방달래요."

 

몇 년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국가간 무역과 운송이 제한되어 시나칼셋이라는 부갑상선호르몬을 억제하는 약의 원료가 수입이 잘 되지 않아 품절이 되곤했었습니다. 이제 코로나 시기가 지나고 나니 물가가 폭등하여 약물을 만들 때 사용되는 원자재 가격도 폭등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 적용 약물 가격은 국가에서 정하므로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올릴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마진이 거의 없었던 값싼 약들은 이제 만들면 만들수록 손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약회사에서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어려워지자, 전국적으로 의약품들의 품절사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약이 듀파락 제품입니다. 투석환자분들은 어쩔 수 없이 수분이나 채소, 과일 등을 마음껏 섭취하지 못하고 제한합니다. 거기에 여러가지 약물들, 칼륨을 낮추는 약, 인을 낮추는 약 등을 많이 섭취하므로 변비가 잘 생깁니다. 대부분의 투석환자분들이 변비를 경험하고 변비약을 자주 드시는데, 이 때 약방의 감초같은 변비약이 바로 듀파락입니다. 맛이 좀 달달하여 호불호가 있지만, 비교적 안전하면서도 효과가 좋아 장기복용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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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파락은 중외제약에서 만드는 아주 유명한 변비약입니다. 2021년 12월 원래 개발사인 애보트에서 상표권을 회수해감에 따라 2022년 1월 1일부터 듀파락 대신 듀락칸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듀락칸의 주성분은 락툴로오즈입니다. 이 원료는 애보트사로부터 공급을 받는데, 코로나 이전부터 마진이 거의 없어 간헐적으로 품절사태가 일어나곤 했었던 약입니다. 그러다보니 2022년 초에 12% 정도 약가를 올려주긴 했으나 그럼에도 요새 듀락칸을 구하기 참 어렵습니다. 낱개 포장된 듀락칸 이지 시럽은 더더욱 구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간간히 공급되는 한 통 500mL 짜리 듀락칸 시럽으로 처방을 하고 있으나, 들어오면 금세 품절입니다.

 

듀락칸 외 다른 변비약들도 있긴 합니다. 마그밀 같은 약은 투석환자분들이 사용하기에 마그네슘이 체내에 축적되는 고마그네슘혈증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또 다른 변비약인 실콘, 아기오 등은 대변의 부피를 크게 하는 메커니즘의 약으로 장운동이 극히 저하된 환자분의 경우 오히려 대변의 부피가 커져 변비가 더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듀락칸 성분인 락툴로오스가 포함된 일반약품도 있으나 가격이 비싸고 또 다른 삼투성 하제인 모비락스 같은 제품들은 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듀락칸보다는 가격이 훨씬 비쌉니다.

 

희귀의약품도 아니고 고가의 비싼 약도 아닌데, 오히려 구하기가 어려운 현실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당뇨약에도 있습니다. 투석을 하는 원인질환 1위가 바로 당뇨이기 때문에, 투석하시는 분들 중 당뇨가 있는 분들은 참 많습니다. 문제는 콩팥 기능이 저하된 분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당뇨약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당뇨약인 메트포민도 투석환자분께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인슐린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인슐린을 쓰면 체중증가의 부작용이 있다는 점입니다. 비만이 있는 분께 인슐린을 사용하면서 체중이 자꾸 늘어나고 비만이 악화되면 그 자체도 문제지만, 투석 중 저혈압이 빈번해져 여러 문제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슐린을 사용하기전 또는 인슐린을 사용하면서 식욕 억제의 효과, 체중 감량의 효과가 있는 GLP-1RA 종류의 트루리시티라는 제품을 잘 사용했었습니다. 트루리시티는 미국 릴리에서 만든 제품으로, 1주일에 1번만 주사해도 되는 편의성이 있고 투석환자분에게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 가뭄속 단비와 같은 약품이었습니다. 게다가 심뇌혈관 질환 예방효과도 있으니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20.07.22 - 투석환자분에게 트루리시티 혈당 낮추는데 효과 좋네요! 트루리시티 보험기준, 주사방법 동영상

 

투석환자분에게 트루리시티 혈당 낮추는데 효과 좋네요! 트루리시티 보험기준, 주사방법 동영상

요새 혈당조절이 잘 안되는 투석 환자분들께 트루리시티 주 1회 맞는 주사제를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오심, 구토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까지는 심한 부작용 없이 잘 사용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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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약이다보니, 전세계적으로 사용량이 급증했고 품절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 약품 가격을 제약회사 마음대로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아마 릴리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에 제품을 먼저 공급할 유인이 없을 것입니다. 최근 각광받고있는 또 다른 경구 당뇨약인 SGLT-2 억제제를 트루리시티 대신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은 일반 당뇨환자들에게만 국한된 선택지입니다. 투석환자분에게는 SGLT-2 억제제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말기신장병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좋은 당뇨약 옵션 1가지가 사라져버린 셈입니다. 뭔가 우리 투석환자분들만 소외되버린 느낌입니다.

 

과거 프랑스 로베스피에르의 지나친 우유 가격 통제로 인해 우유 공급이 줄어들었고 이는 결국 우유값 폭등을 일으켰던 일이 있었습니다. 규제의 역설에서 벗어나 합리적으로 약품 가격이 책정되어 공급의 물꼬가 트였으면 합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닌데, 고작 변비약 하나 구하지 못해 처방전을 들고서 이 약국, 저 약국을 찾아 다니는 광경은 더이상 없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