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포진의 공포
나이 많으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상포진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주변에서 대상포진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목격해서 그럴 수도 있고, 최근에 나온 대상포진 백신의 마케팅 (마동석 나오는 광고) 효과 일 수도 있습니다. 또 자극적인 주제의 유튜브 동영상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많은 분들이 대상포진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대상포진의 통증은 매우 심하기 때문에 힘듭니다. 잠도 못자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통증이 심합니다. 게다가 그 통증이 짧게는 수일에서 길게는 수개월까지 지속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최근에 폐렴구균 예방접종도 새로운 제품이 출시되었고, 독감처럼 힘든 RSV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도 새로 개발되어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외래에 대상포진 백신을 맞겠다고 오시는 분들은 많아도, 새로나온 폐렴구균 백신을 맞겠다고 오시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폐렴 구균으로 인한 질환이 대상포진보다 더 치사율이 높고 무서운데도 불구하고 대상포진을 더 두려워 합니다.
어느 커뮤니티 사이트에 글이 올라왔습니다. 피부에 발진이 났는데 대상포진이 맞냐는 것입니다. 시간이 늦어 병원에는 못가보고 우선 이 곳 커뮤니티에 물어본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대상포진 같아 보였습니다. 속으로 내일 아침일찍 동네 병원가셔서 약 바로 처방받아 드시면 되겠네 하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댓글들은 ‘대상포진 무섭다. 바로 응급실 가야한다.’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대상포진의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서 약을 빨리 드시면 좋은 것은 맞는데, 그렇다고 이 늦은 시간에 응급실까지 가야하는 병인가? 그만큼 사람들은 대상포진에 대해 큰 두려움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상적 진단이라는 한계
대상포진이라는 병이 피검사나 엑스레이 같은 검사로 확실히 진단되는 질환이 아니다보니 진단이 쉽지 않습니다. 띠처럼 모여서 나타나는 수포성 발진과 신경통이 있다면 임상적으로 진단이 가능하지만, 실제 병원에 오시는 분은 다양한 임상상으로 오십니다.
“이쪽 피부에 빨갛게 뭐가 났는데 대상포진 아닐까요?”
“옆구리에 통증이 있는데 피부에 발진은 없어요. 대상포진 아닐까요?”
“몸 전체 피부에 군데군데 빨갛게 올라오는데 대상포진 아닐까요?”
그렇다고 이럴때 마다 대상포진약 (항바이러스제) 을 처방할 수는 없습니다.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한 후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오시는 분이나, 경련을 하고 있는 분을 보게 되면, 대상포진약이 절대 만만한 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 의학의 근본은 정확한 진단과 그게 맞는 적절한 치료이기에, 진단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어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대충 치료할 수도 없습니다. 대상포진이란 병을 알면 알수록 참 어렵습니다. 상황마다 증상이 다릅니다. 대상포진 아닌 것 같은데 나중에 대상포진인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대상포진과 관련한 많은 일화들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1
“등이 아픈데 대상포진 아닐까 걱정되요.”
“글쎄요. 피부도 깨끗하고 통증 부위도 대상포진의 전형적인 양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만 더 보시고 발진이 나오거나 증상이 더 심해지면 바로 오세요. 그 때는 대상포진 약을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후에 전화가 옵니다.
“가족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대상포진약 달라고 했는데 처방안해줬으니, 소송걸겠습니다. “
#2
중년의 남성분입니다. 전형적인 대상포진이었습니다. 우측 어깨, 목부분에 군집성 발진이 돋아나있고 통증도 심합니다.
“대상포진 맞네요. 바로 치료 시작하겠습니다. 항바이러스제를 빨리 시작해야 나중에 합병증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오셨습니다. 매우 화가 난 표정입니다. 이미 진료실 밖에서 몇 차례 고함소리가 들립니다.
“아니 약 먹었는데 왜이러죠? 더 심해졌잖아요. 더 퍼졌어요. 이거 제대로 치료하는 거 맞나요?”
“항바이러스제는 합병증을 예방하고 합병증으로 고생하는 기간을 줄이려는 목적이 커요. 약 드신다고 발진이 바로 가라앉거나 통증이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일시적으로 피부 발진이 더 넓어질 수 있지만 결국 좋아지실 거에요. 안심하셔도 됩니다. (분명 어제 설명 다 드린 내용인데….ㅠㅠ)”
#3
50대 여성분입니다. 우측 옆구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신경통의 양상 같지도 않았고 증상도 심해보이지 않습니다. 피부도 발진 없이 깨끗합니다. 혹시나 대상포진일까 걱정된다고 하는데 걱정을 많이 하시고 예민하신 분 같아서 가능성 있는 병에 대해 검사를 진행해보았습니다. 간, 담낭, 콩팥을 초음파로 확인하였고 요로결석, 담석 등은 없었습니다.
“초음파 검사 상 아무 문제 없으시네요. 그래도 대상포진 초기에는 발진없이 통증만 있을 수 있으니 혹시라도 발진이 생기면 바로 오세요. 대상포진약인 항바이러스약은 독하고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진단을 확실히 한 후 처방해드릴게요.”
2일 뒤 아침일찍 와계십니다. 원망과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대상포진 맞잖아요! 피부 보세요. 발진 있잖아요. 대상포진은 약 빨리 먹어야 한다는데 왜 약 안주셨어요? 친구가 이 병원에서 대상포진 치료 빨리 했다고 해서 일부러 찾아온 것인데 왜 약 안줬어요?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발진 양상도 대상포진 맞네요. 이게 참 초기에는 진단하기가 무척 어려워요. 그렇다고 무조건 약부터 드리기에는 부작용도 있도 독하기도 하고. 항바이러스제 바로 처방해드릴테니 바로 드세요.”
#4
60대 남자환자분 입니다. 어제부터 옆구리가 아프다고 왔습니다. 통증은 신경통 양상이나 심하지 않습니다. 혹시 몰라 초음파 검사도 해보았는데, 특별히 옆구리가 아플만한 소견은 보이지 않습니다. 증상도 그렇고 여러가지 정황상 초기 대상포진 가능성이 있어 대상포진 약을 처방하였습니다. 대상포진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2일뒤에 다시 오셨습니다.
“피부에 발진이 생겼는데 대상포진 맞죠?”
“맞네요. 이제 발진이 나오네요. 대상포진 맞아요. 어차피 치료 시작하시고 약 잘드시고 계시니 통증만 괜찮으시면 지금 치료 유지해도 되겠습니다. 약 드신다고 발진이 바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초반에는 발진이 커질 수 있지만 서서히 좋아질 거에요.”
“네. 통증도 그렇게 심하지 않아요. 혹시나 해서 와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