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추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투석실 이야기] 추한 모습을 보여서 미안해.

 

 

첫 만남 : 극도의 저염식

 

최근 80세 할머니 한분이 투석을 시작하였습니다.

콩팥이 나빠진 원인은 당뇨였습니다.

이곳에 처음 투석하러 오신날,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한손에는 묵주를 꼭 쥐고 계셨습니다.

 

첫 날 투석을 하면서 시행했던 검사를 보니

영양수치도 바닥, 나트륨도 바닥, 인수치, 칼륨 수치도 바닥입니다.

이 검사결과는 너무 음식을 못드셔서 생긴 결과 같았습니다.

첫날 메스껍고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잘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 스쳐갔습니다.

 

다음 투석 날 오셨을 때 여쭤봅니다.

"어머니 왜 식사를 잘 못하셨어요? 혹시 너무 싱겁게 드시는 것은 아니세요?"

보통 투석이나 입원 같은 큰 변화가 생기면,

가족분들이 신경을 많이 써줍니다.

이럴 때 저염식을 너무 극도로 하게 되면

음식 맛이 달라져 평소보다 식사를 못하게 되고

식사를 못하니 전해질 균형이 깨지고 (특히 나트륨)

그러다 보니 더 구역질이나고 식사를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되기 쉽상입니다.

 

어머니 답변도 역시 맞았습니다.

투석을 하게되면서 철저한 저염식을 하게 되었고

음식이 너무 싱거우니 별로 드시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매번 구역질이난다고 합니다.

 

"일단 식사를 잘하시고 영양이 좋아야 그 다음 저염식을 하던지 하지요.

따님에게 저염식을 풀어달라고 하시고 간을 좀더 해서 드시는게 좋겠어요.

혈압이 오르거나 검사 결과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때 얼른 말씀드릴게요.

지금은 일단 잘 드시는게 우선이에요."

 

 

 

 

식사량이 회복되니 이제는 혈당!

 

이렇게 강력한 저염식의 덫을 풀어드리고 나서

식사량이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구역질도 없어졌고 체중도 조금씩 늘어오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혈당이 올라갑니다.

아무래도 식사량이 늘어나니 혈당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식후 혈당이 300~400까지 측정되자

혈당이 잡히지 않는 다고 걱정을 하십니다.

 

"어머니 걱정마세요. 음식을 잘 드시니까 혈당이 당연히 오르지요.

혈당 오른다고 밥을 굶지는 마세요.

식사는 지금처럼 잘 하시고 차라리 인슐린 용량을 올려서 맞으면 되요."

 

할머니는 혈당 수첩에 열심히 혈당을 적어오셨고

저는 혈당수첩을 보며 요리조리 인슐린 용량을 조절해드렸습니다.

 

인슐린 용량이 점점 늘어가자 

할머니는 걱정이 되는 눈치였습니다.

 

"이렇게 인슐린을 많이 맞아도 되나...?"

 

"지금은 인슐린을 올리는데, 혈당이 잡히기 시작하면 탈진해 있던 췌장이 회복하면서

인슐린을 좀더 힘차게 분비해줄 거에요. 그러면 다시 인슐린의 용량을 어느정도는 줄일 수 있어요."

 

실제로 인슐린을 증량하면서 식후 혈당이 300~400에서 200대로 잡히기 시작했고

혈당은 점점 좋아져서 인슐린의 용량을 점차 감량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도 잘하시고 혈당도 좋아졌다. 이제는 활동량을 회복하자!

 

이렇게 식이와 혈당, 혈압, 체중, 동정맥루 수술 부위 등등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하다보니,

할머니와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투석하러 오실때마다 기본 10분 이상은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집안 상황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분들이 할머니를 많이 배려해주시고 챙겨주시는 모양입니다.

 

식사에서부터, 투석실까지 왔다갔다 데려다 주는 일

아직은 투석 후 기운이 없어 주로 방에서만 있게되니까

자녀분들이 많이 신경을 쓰는 모양새입니다.

 

처음 투석 시작할때 입원에서부터 지금 투석실까지

자녀, 사위를 비롯한 여러 타인의 도움을 받게 되자

혼자서 할 수 없는 이러한 상황에 우울감이 많이 든다고 말씀하시네요.

성당 미사에도 가보고 싶은데, 몸이 이래서 가볼 수도 없고

이런 아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많이 창피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많이 흘리시네요.

"아이고 늙어서 주책이네... 이런 추한 모습을 보여 미안해..."

 

"어머니, 검사결과도 너무 좋고 

혈압, 혈당, 체중관리 잘 하고 계셔서

지금부터 조금씩 집안에서 걸어보시고 활동량을 점차 늘려나가다 보면

충분히 혼자서 성당에도 가실 수 있고

이곳 투석실에도 왔다갔다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물론 자녀분들 도움을 받으셔야겠지만

점점 더 좋아지실 거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같이 노력해봐요."

 

결과를 알고 있으면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쉽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할머니께서 혼자서 투석실로 걸어오시는 미래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