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조폭 환자 한 사람

 

내가 아는 조폭 환자 한 사람

 

 

몇 년전이다. 내가 전공의 생활을 할 때 내분비내과를 수련할 때였다. 대부분 당뇨 환자를 보았는데, 그 중 몸집이 퉁퉁하고 눈빛이 매섭고 머리를 짧게 깎은 환자가 있었다. 몸에는 용문신이 휘감고 있었고 군데군데 칼로 베인듯한 상처자국이 보였다. 소문을 들어보니 조폭이란다. 이곳 출신은 아니고 다른 지방에서 활동하는데, 한 번씩 요양하듯 입원을 한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다른 과로 넘어가는데, 하필이면 이 때 입원을 했나.

당뇨 뿐만 아니라 백혈병을 앓은 적이 있어서 (물론 과거에 치료를 완료 하였고 현재 재발은 없었던 분이다.) 진통제를 많이 요청한다. 백혈병 같은 암 환자는 통증 조절이 중요하다. 그래서 진통제를 투여하곤 하는데, 이 분은 마약진통제를 원한다. (암성 통증의 해소를 위해 마약 진통제는 널리 사용되고 있고 적극 권장되고 있다.) 중독과 남용이 걱정이 되어 하루 맞을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였으나, 통증이 올 때면 매우 날카로워져 의료진과 실갱이가 있곤 한다. 나는 병동의 평화가 중요했기에 횟수를 넘기더라도 1~2번은 더 투여를 승인했다. 만약 그렇게 안했으면 책상을 뒤집고 난장판을 만들었을 것이다. (과거에 그렇게 했다고 소문을 들었다.) -- 그의 팔을 본적이 있는데, 주사를 하두 맞아서 그런지 정맥혈관이 마치 단단한 고무관처럼 변해있다. 허허.

혈당조절은 정말 안된다. 경구약제의 최대 용량도 모자라 인슐린을 하루에 200단위씩을 주사했다. 이렇게 인슐린을 많이 쓰는 분을 나는 처음봤다. 보통 펜 형태의 주사제를 많이 선호하는데, 보통은 수십회는 맞는데, 이분은 2~3번이면 끝난다. 그래서 옛날 구식 바이알 형태의 인슐린을 직접 주사로 재서 투여하곤 했다. (가끔 병실 개인냉장고에서 콜라 같은 탄산음료를 꺼내 그냥 재껴 입속에 털어넣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당연히 혈당이 조절될 턱이 있나. 저혈당이 올까봐 탄산음료를 항상 구비해 놓는단다.)

나는 그 환자분과는 관계가 비교적 좋았다. 초콜릿, 탄산음료 같은 것은 많이 얻어먹었다. 퇴원도 자기 마음대로다. 혈당이 잘 조절될 것 같으면 탄산음료를 털어넣는지, 다시 혈당은 엉망이 된다. 본인이 이제 퇴원해도 되겠다 (=돈이 다 떨어졌다.) 싶으면 그제서야 혈당이 조절되는 것 같다. 그러면 짐을 싸들고 지방으로 내려가 다시 조폭생활을 재개한다. 

그러다가 돈이 모이고 좀 쉬어야겠다 싶으면 다시 응급실로 온다. (인슐린 없이 탄산음료를 마신 후 혈당을 엄청 올린뒤, 온갖 불편한 증상들을 말하면서... ) 만일 입원을 안시키면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입원을 시켜준다.

말썽만 피울것 같지만, 그래도 병실에 입원해있으면 온 병동을 다 돌아다닌다. 병원에 간호사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병원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곳곳에 흩어진 폴대 (수액을 걸어놓는 환자가 끌고다닐 수 있는 길다란 걸이) 를 수거하여 각 병동에 찾아주는 일을 도맡아서 한다. 아마도 담배피러 내려갔다가 근처에 널부러진 폴대를 가져오는 것이리라.

 

 

그 후 몇 년 뒤 최근에 그 분이 투석을 했다고 한다. 투석을 시작할 때의 상황이 급박했는지, 지방 근처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서 그 길로 투석을 시작했다고 한다. 투석을 하게되므로서 내분비내과 - 혈액종양내과의 순환고리에서 이제 신장내과가 추가되었다. 역시나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이전처럼 온 병원을 쓸고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인슐린 용량도 굉장히 적어졌다. (물론 투석시작을 하면 인슐린 투여량이 다소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좀 기운도 없어보이고 우울해보인다. 실제로 투석을 시작 한 후 숨이차고 활동량이 적어져서 그런지 이미 우울증 약도 복용 중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도 50대로 접어들었다. 무서운 눈매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표정도 참 슬프다. 그의 몸뚱아리에 쓸쓸한 용문신만 남아있을 뿐이다. 이제 병동에서 그를 모르는 간호사들도 많다. 간호사들도 많이 바뀌어 신규간호사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는 예전처럼 자신의 존재를 뽐내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없다. 버거워 보였다. 최근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차다고 한다. 조용히 투석실로 와서 4시간 투석을 받고 다시 병실로 돌아간다. 심장초음파를 해보았는데, 심장기능이 많이 좋지 않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죽는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세상사가 참 덧없다. 냉장고에서 콜라 한 캔을 멋들어지게 뜯은 뒤 그 자리에서 바로 원샷을 날리고 혈당이 600이 찍혔던 과거의 그 순간, 그는 과연 지금의 초라하고 나약해빠진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끝.

댓글(6)

  • 2020.01.08 11:30 신고

    누구든 기력이 쇠하는 모습을 보는건 힘든일인데 ㅠㅠ 존경스럽네요 ㅠㅠ

    • 2020.01.11 14:43 신고

      환자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예전 종양내과에서 수련할 때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원래 종양내과를 선택하려했었죠.

  • 2020.01.08 14:02

    비밀댓글입니다

  • 2020.01.08 18:09 신고

    감사합니다. 기억력이 좋지않아 자료정리용으로 만들었던것인데 도움이 된다고 하시니 뿌듯하네요. 시험잘보시고 화이팅 하십쇼. 이미 합격해있을것이니 걱정마세요!

  • 2020.01.08 21:34 신고

    이런 글을 볼 때마다 인생은 참 오묘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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