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의학용어를 사용하여 대화하는 의료진들, 그들은 환자인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어 답답하고 무섭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만 보고 짐작할 뿐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프로젝트에서는 각 질병에 대해 흔히 사용하는 의학용어와 치료에 관한 대강의 방향을 쉽게 설명하여 의료진들과의 의사소통을 더욱 쉽고 정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다만 질병의 치료는 각 개인에 맞추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치료적 결정은 주치의와 상의하여야 하며, 본 코너에서는 큰 흐름만 설명할 것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5. 스피닝 후 붉은 소변을 봤다면? 그건 횡문근융해증
해마다 연말, 연초가 되면 응급실 단골 고객이 생기는데, 운동을 시작하고 난 뒤 붉은 소변을 봐서 찾아오는 환자분입니다. 보통 응급실 오기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고 오시기 때문에 본인이 횡문근융해증이 의심된다는 것 정도는 대충 알고 계십니다.
운동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등산, PT, 스피닝, 상체운동, 역기들기 등등 여러가지 운동을 하고 심한 근육통을 호소하며, 진한 색의 소변을 봤다는 것은 비슷한 시나리오 입니다. 그 중 제 경험적으로 가장 흔한 운동은 스피닝 같습니다. 느낌에 횡문근융해증 환자의 70~80% 는 스피닝이 원인 운동이었던 경우인 것 같습니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알것 같습니다.
"붉은 소변이 나와서 왔어요."
"혹시 운동을 심하게 하고 그러셨나요?"
"네..."
"요 앞에 새로생긴 스피닝 거기죠? ㅠㅠ"
"네...ㅠㅠ"
"그럼 대충 아시죠? ㅠㅠ"
"네...ㅠㅠ 횡문근융해증...."
횡문근융해증은 무엇일까요? 횡문근은 가로무늬근이라고도 하며, 대부분 우리 몸의 골격근을 구성합니다. 즉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을 말합니다. 다른 근육의 종류로 내장에 있는 평활근은 소화를 돕기위해 수축과 이완을 하는 연동운동을 하지만 의식적으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횡문근융해증이란, 이런 횡문근이 과도한 운동이나 술, 고온 등에 의해 손상되어 생기는 질환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Rhabdomyolysis 즉 Rhabdomyo- 는 횡문근을 의미하며, lysis 는 분해, 융해를 의미합니다. 의사들은 랍도마이오라이시스라고 이야기 안하고 보통 줄여서 "랍도" 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랍도 환자 소변량 괜찮나요?" 등으로 쓰입니다.
횡문근을 붉에 만들어주는 성분 중에 미오글로빈 (myoglobin) 이라는 색소가 있습니다. 헤모글로빈이 빈혈수치로서 여러 장기에 산소를 운반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반면, 미오글로빈은 근육에 산소를 공급하는 일을 합니다.
근육이 손상되면, 미오글로빈이 혈액내로 방출됩니다. 그런데, 미오글로빈은 우리몸에서 만든 물질이지만, 혈액내로 나오면 독성이 있습니다. 즉 근육 속에만 있어야 하는 애들인데, 밖으로 나오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어떤 문제가 생기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미오글로빈이 혈액을 타고 온몸을 돌다가 콩팥이라는 거름망에 걸려 급성 신손상을 줄 수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손상을 일으키는 여러 기전이 있지만... 우선 쉽게 설명하겠습니다.) 콩팥이 손상되면 투석까지 시행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습니다. 최근에 경험한 케이스로는, 젊은 환자가 약을 잘못 먹고 횡문근융해증이 생겨 투석까지 했던 경우입니다. 다행히 신장은 회복이 되어 현재는 투석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횡문근융해증으로 투석까지 진행해야할 심각한 경우에는, 콩팥 기능이 회복되지 않고 계속 투석을 해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횡문근융해증이 의심이 되면 즉시 치료를 시행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는 구획증후군이 생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근육이 손상을 받으면, 염증이 생기고 붓게 되는데, 팔이나 다리 같은 경우 단단한 근막으로 구획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정된 공간에서 근육이 붓게되면 압력이 세지고 그 주변을 지나는 신경이나 혈관을 누르게 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구획증후군은 영어로 compartment syndrome 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간혹 증상이 심한 경우 정형외과 진료를 같이 보기도 합니다. 구획증후군이 생겼을지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만일 구획증후군이 생기면 칼로 피부를 가르고 근막을 여는 시술을 합니다. 사진이 너무 잔인해서 차마 보여드리지는 못합니다. ㅠㅠ
위 내용만 봐도 횡문근융해증이 쉬운 병이 아니구나 짐작하셨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1주일 정도 푹 쉬고 수액도 맞고 하면 좋아지지만, 위 합병증들이 발생할까 염려되어 입원을 하는 것입니다. 생기면 모두 심각한 상황을 초래합니다.
횡문근융해증을 진단하는 방법은 혈액검사와 소변검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혈액검사에서는 CPK 라는 근육효소 수치가 많이 상승해 있습니다. 당연히 근육이 깨졌기 때문에 근육 효소가 혈액에 많이 검출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간수치도 증가합니다. 간수치는 간세포에 있는 효소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효소가 간세포 뿐 아니라 근육에도 있기 때문에 같이 올라갑니다. 간기능은 이상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간수치가 예상보다 너무 높을 때에는 다른 이상은 없는지 간초음파를 같이 시행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신장기능을 확인하기 위해 크레아티닌 수치의 확인도 필요합니다. 소변검사에서는 특징적인 패턴이 있지만, 전문적인 내용이므로,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그리고 뼈스캔을 하면, 어느 근육에 손상이 있는지 눈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시행하기도 합니다. 손상 범위를 보고 퇴원을 일찍해도 될지, 어느 근육은 사용해도 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스피닝 후 횡문근융해증이 발생한 환자의 뼈스캔 (Bone scan) 사진입니다. 당연히 뼈가 보입니다. 그리고 허벅지 쪽으로 시커멓게 보이는 부분이 손상이 간 부분입니다.
치료는 간단합니다. 투석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선 대량의 수액을 투여합니다. 그래서 소변으로 myoglobin 이 걸리지 않고 잘 내려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꼼짝 하지말고 누워있는 것입니다. (의료진은 ABR 이라고 표현합니다. Absolute bed rest 의 약자입니다. 절대안정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근육을 쉬게하는 것입니다. 손상된 근육을 자꾸 움직이면 좋아질리 없겠죠?
그런데 대량의 수액을 투여하기 때문에 소변을 많이 보게됩니다. 즉 화장실을 자주 가게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아예 소변줄 (foley catheter, 폴리라고도 합니다.) 을 꽂아서 절대 못움직이게 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그렇게 까지는 안하는 것 같고, 대신 자리에서 소변통에 소변을 보게끔 합니다. 어째든 가장 중요한 것은 대량의 수액치료 및 절대 안정입니다.
매일 혈액검사를 하여 신기능에 문제가 없고, CPK 도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라면, 이제 퇴원이야기가 슬슬 나올 것입니다. CPK 가 정상이 되어야 퇴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CPK 가 높아도 감소 추세가 확실하고 안정 상태라면 퇴원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당연히 퇴원해서도 물 많이 섭취하고 안정을 취하는게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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