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6. 맹장염? 급성충수염?
- 03_프로젝트/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 2020. 4. 27.
어려운 의학용어를 사용하여 대화하는 의료진들, 그들은 환자인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어 답답하고 무섭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만 보고 짐작할 뿐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프로젝트에서는 각 질병에 대해 흔히 사용하는 의학용어와 치료에 관한 대강의 방향을 쉽게 설명하여 의료진들과의 의사소통을 더욱 쉽고 정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다만 질병의 치료는 각 개인에 맞추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치료적 결정은 주치의와 상의하여야 하며, 본 코너에서는 큰 흐름만 설명할 것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6. 맹장염? 급성충수염?
맹장염! 누구나 들어봤을 병이며, 가장 흔한 응급수술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맹장염은 잘못된 명칭이며, 충수염이나 막창자꼬리염이 정확한 용어입니다. 왜 대다수가 잘못 사용하고 있는지, 맹장의 사전적 정의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봅시다.
맹장 : 끝이 막힌 주머니 모양의 위창자관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막힌 주머니 모양의 장을 맹장이라 합니다. 그럼 실제 위치를 해부학 사진을 통해 확인해봅시다.
아래 사진은 대장의 모식도입니다. 대장은 크고 주름이 져있습니다. ileocecal valve 라고 표시된 부분이 소장의 끝과 대장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Caecum (또는 Cecum 이라고 합니다.) 라고 적혀있는 부위가 있습니다. 그 부분이 맹장입니다.
맹장(막창자)을 더 자세히 보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막혀있는 주머니 모양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appendix 라고 하는 부위가 충수 (또는 막창자꼬리) 입니다. 이 부분에 염증이 생긴 것이 바로 급성충수염 입니다. 흔히 맹장염으로 잘못 부르는 병입니다.
영어로는 Acute appendicitis 라고 하며, 흔히 의사들은 줄여서 "appe" (아뻬) 라고 이야기 합니다.
"응급실에 아뻬 환자 수술 준비되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 합니다.
급성충수염의 원인으로 보통 딱딱한 변 (음식찌꺼기) 이나 이물질 또는 주위 염증, 드물게는 암 등으로 인해 충수의 내부가 막혔기 때문에 충수염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급성충수염은 비교적 흔하지만, 빨리 수술을 해야하는 병이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진단이 중요합니다.
대형병원이나 응급실에서 맞닥드리는 경우 그냥 CT 를 찍으면 쉽게 확인이 되기 때문에 어렵지 않으나, 지역병원이나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는 쉽게 CT 를 찍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해서 배아픈 환자를 모두 CT 를 찍으러 큰 병원으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하지만 급성충수염은 특징적인 증상이 있습니다. 특징적인 증상이 있다면 수많은 복통을 가진 환자분들 중에서도 충수염의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선별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위에도 이야기 했듯이 충수의 내부가 막힌 상황을 가정해봅시다. 막히더라도, 충수 내부에서 장 점막의 점액 분비는 계속 되지만 배출이 안되므로, 압력이 증가합니다.
우리 몸의 장은 칼로 잘라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나, 늘어나면 통증이 느껴집니다. 가스가 차거나 어딘가 막혀서 늘어나면 장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통증은 애매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우리 몸의 내장장기에 분포해 있는 통증을 느끼는 세포들은, 피부에서 느끼는 통증의 세포들과 종류가 다릅니다. 피부에 상처가 나서 발생한 통증이나, 뼈가 부러져서 생기는 통증은 그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이를 체성통이라고 합니다. ; Somatic pain) 하지만 내장 장기에서 오는 통증은 그 위치를 정확히 짚어내기 어렵습니다. 은근히, 애매하게 아프기 때문입니다. (이를 내장통이라 합니다.; Visceral pain)
충수의 내부 압력이 올라가면, 장이 늘어나고 팽창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증이 옵니다. 하지만 내장통이라 그 위치를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은근히 불편하고 배가 아픈 것 같고 그런 느낌입니다. 보통 상복부나 배꼽 주위에 통증으로 표현합니다.
하지만 병이 진행되면, 압력은 더 높아지고, 정맥혈의 순환이 안됩니다. 그러면 충수의 점막이 혈액순환이 안되므로, 괴사하고, 장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 대장균 같은 세균들이 더욱 증식하게 됩니다. 이런 일련의 염증 반응이 강화되고 진행되면 비로소 염증이 장을 둘러싸고 있는 복막까지 침투하게 됩니다.
복막은 장과 달라서 체성통의 신경이 지배합니다. 즉 염증으로 침범된 복막의 그 위치를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습니다. 보통 이 단계에서 환자는 충수가 있는 곳에 통증이 있다고 표현하기 때문에 급성 충수염이 의심되어 CT 를 찍게되고, 진단이 맞다면 수술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만일 통증이 있는데도 참았다면 병은 더 진행되어 결국 충수가 터지게 되고 구멍이 납니다. 원래 배 속은 무균이어야 합니다. (생리학적 측면에서 장 내부는 몸 밖으로 간주합니다. 몸 속이 아닙니다.) 그런데 구멍난 장을 통해 세균이 쏟아져 나오고 복막염까지 초래할 수 있습니다.
즉 요약하면, 급성충수염의 증상 중 가장 특별한 것은 통증 부위가 이동한다는 것입니다.
초기에는 애매한 증상으로 나타나 배꼽주위라던가, 상복부라던가 충수와는 다른 부위에 통증이 있다고 호소합니다. 이 단계에서 어떤 의사라도 바로 급성충수염이라고 지목하기는 어렵습니다.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는, 더 흔한 질환들이 더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바로 CT 부터 찍자고 하면, CT 의 부작용은 둘째치고라도 과잉진료라는 오해를 받기 쉽상입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충수염을 진단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흘러 애매한 복통이 이제 맹장, 충수가 위치한 오른쪽 아랫배 (우하복수)로 내려온다면!? 이러면 충수염을 의심해야합니다. 의사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누구든 충수염을 의심할 것입니다. 이런 병의 특징적인 모습 때문에 여러가지 해프닝이 생기기도 합니다. 처음 찾아갔던 병원에서는 장염, 위염이라고 했는데, 나중에 찾아간 다른 병원에서 충수염 진단을 받으니, 첫번째 만난 의사는 돌팔이, 두번째로 만난 의사는 명의로 느껴집니다.
한편, 사람마다 충수의 위치가 다른 경우도 있어서 주의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충수염이 우하복부가 아닌 우상복부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다른 증상으로는 식욕감퇴, 구역, 구토가 있습니다. 특히 식욕감퇴는 급성충수염에서 매우 흔하여 이런 말도 있습니다.
"Hungry patient does not have acute appendicitis (배고픈 환자는 급성충수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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