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2년전 숨이 차서 오신 중년의 남성분이 있습니다.

검사를 해보니 폐에 물이 차있고 콩팥기능도 나빠 투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혈압과 당뇨가 있었지만 그동안 정기검진 한번 없이 지낸 분입니다.

결국 병이 곪고 곪아 말기신장병이 되버렸습니다.

 

투석을 시작하고 많이 좋아졌습니다.

폐에 고여있던 물도 다 빠지고, 혈압과 혈당도 안정되었습니다.

숨이 찬 증상이 호전되자 이제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없게되었습니다.

표정도 밝아졌고 자신감도 엿보입니다.

 

투석을 시작하고 표정과 얼굴 색이 건강하게 바뀌고

전에 못했던 일들을 하면서 일상이 바뀐 분들을 보면 저도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어느 날, 회진때 그 분이 갑작스런 질문을 합니다.

 

"일을 해도 되나요?"

 

"당연히 일을 해도 되죠."

 

당연히 투석 환자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투석을 한다는 것은 시한부 선고가 아닙니다.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 없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 투석 후 전반적인 건강상태가 회복되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수개월이 지난 뒤 또 문의를 합니다.

 

"일 때문에 투석을 3번 올 수가 없습니다. 2번만 와도 됩니까?"

 

"안됩니다. 현재의 콩팥 상태로는 2번으로는 부족합니다. 3번을 해야합니다."

 

"그럼 직장에서 짤립니다. 지금 생계가 어렵습니다. 먹고는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3번을 꼭해야한다는 당부에도 그분은 결국 투석을 2번밖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직장 근처 투석실을 알아봐드릴게요.

투석실을 옮기셔도 되니, 건강을 위해서 투석은 꼭 3번 하셔야합니다."

 

하지만, 그 분 직장이 외진곳에 위치한 터라 근처에 투석실이 없었습니다.

 

처음 투석 시작할 때만해도

말기 신장병 상태였지만 소변도 잘 나오는 편이고,

매달 하는 정기 검사 결과도 좋은 편이었습니다.

콩팥의 기능이 일부 남아있어 어느 정도 자기 역할을 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콩팥의 기능이 남아있으면,

같은 투석환자라 해도 유익함이 많습니다.

 

소변을 보기때문에 어느정도 수분 배출이 되기때문에

수분섭취나 식사량을 덜 철저하게 조절해도 어느정도 관리가 됩니다.

또 남은 콩팥이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복용하는 약도 적어집니다.

 

이렇게 남은 콩팥의 기능을 오래오래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콩팥도 노쇠해지기 때문에 남은 기능을 소진하게 될텐데,

그러면 더욱 체중조절도 더욱 철저하게 해야되니 음식과 수분도 제한해야하고,

복용하는 약도 많아집니다.

이런 설명을 아무리 자세하게 해드려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습니다.

 

좀 더 서술을 해보면,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콩팥 기능이 일부 남아있는 분

식사를 맛있게 잘 드셔도 체중이 거의 늘지 않고

인이나 칼륨 등의 전해질 균형이 유지된다.

투석치료는 하지만, 일상생활만 보면 거의 일반사람과 비슷해보인다.

 

콩팥 기능이 거의 없는 분

식사나 물을 섭취하는 족족 체중으로 쌓인다.

주말을 지내고 오면 체중이 확 늘어 본인도 당황, 의료진도 당황하게 된다.

늘어온 체중을 다 빼야하니, 투석을 하고나면 기운이 쫙 빠진다.

그러다보니 맛있는 음식을 앞에두고도 투석으로 뺄 생각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매달 한번씩 시행하는 정기 검사에서 매번 잔소리를 듣는다.

분명 처방받은 약을 잘 복용했는데 또 칼륨이 높다고 한다.

아차! 검사 전날 먹은 복숭아가 기억난다. 왜 하필 그때 복숭아를 먹었을까.

후회가 밀려온다.


 

 

이렇듯 남아있는 콩팥 기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투석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남은 콩팥 기능은 금새 없어집니다.

 

투석을 받는 동안 콩팥은 쉬는 시간을 갖게됩니다.

그런데, 투석시간이 줄어들면, 그 시간동안은 콩팥이 일당백으로 일을하고 빨리 망가집니다.

 

다른 말기신장병 환자분들에 비해 좋은 조건을 가지고 계신데,

못해도 몇년은 버틸수 있는 신장인데,

왜 그 좋은 신장을 일부러 혹사시키는 것인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결국 이 분은 투석 횟수를 줄인 후

체중조절이 잘 되지않으면서 (수분이 제거되지 않고 쌓이면서)

폐에 다시 물이 찼고, 숨이 차서 잠을 잘 못잘 지경이 되었습니다.

결국 휴가를 내서 투석 횟수를 다시 늘렸고 강도높은 투석 치료를 진행하였습니다.

현재는 모두 회복되었고 체중조절을 철저히 해오시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콩팥은 그동안 많이 약해져 소변도 줄었고, 검사결과도 나빠졌습니다.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소변이 전혀 나오지 않게 될 것이고,

콩팥 기능이 전부 소진되어 여러가지 불편하고 심각한 증상들이 우후죽순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 때 소변이 나올때가 좋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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