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내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

 

내 몸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다.

 

 

1. 지금 당장 수술을 한다면 딱 좋은데...

 

3년전 처음 투석을 시작한 분입니다.

50대 초반 남성분.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짙게 베인 말투에

표현 하나는 확실히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병원에 불만사항이나 자기 의견은 분명히 표현하는 분.

 

약간 비만한 체형으로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내시경과 초음파를 했는데

왼쪽 콩팥에 3~4cm 크기의 혹이 하나 있습니다.

깜짝 놀라 여쭤보니, 이미 알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병원에서 혹이 있는 것을 들었고 암이 의심된다고 했지만,

조직검사나 수술을 했을 경우 출혈이 생기고 지혈이 안될 것을 염려하여

더이상 치료를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미 오래되었고, 크기도 그때와 똑같으니, 아마 안자랄것 같다고.

암이라도 자신은 끄떡없다고 호탕하게 말하곤 하였습니다.

 

"지금 조직검사를 빨리 해서 암인지 확인하고,

전이된 부분이 있는지 전신 검사를해서 괜찮으면 수술 딱 하면 완치될 수 있어요! 빨리 수술하세요!"

 

"조직검사나 수술하다가 피나면, 만약 잘못되면 누가 책임진답니까?

나는 의사들 안믿슴니더."

 

 

 

2. 왜 자꾸 고집을 부리십니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뭔가 그 분에게 증상이 생기면, 콩팥에 있는 종양 덩어리를 지적하며, 검사를 권했습니다.

이번에도 소화가 잘안되는 증상이 악화되어 CT 를 다시 찍어보도록 권했습니다.

역시 CT 를 보니 이전보다 종양의 크기가 커졌습니다. 5cm 정도 되어보입니다.

게다가 폐에는 미세한 전이가 있다는 이야기 까지 들었습니다.

 

'앗, 이미 전이가 되버렸구나'

 

투석실에서는 보통 3개월마다 한번씩 흉부 X-선 촬영을 합니다.

이 분도 3개월 마다 시행했는데, 폐 전이 결절이 커지면서 엑스레이 사진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폐전이가 있어도 자신은 멀쩡하다며

자신은 절대 암으로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

 

 

 

 

3. 결국 더 힘든 치료를 받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가 더 지났습니다.

어느날 그분이 다급하게 외래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소변이 안나온다고...

소변을 보고 싶은데 방광이 터질 것 같은데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핏덩어리가 나오더니, 다시 소변이 나오면서 시원해졌다고 합니다.

휴지에 주섬주섬 싸온 물건을 보니, 길쭉한 핏덩어리 였습니다.

 

'아... 드디어 시작되었구나. 그동안 가만히 있던 암세포의 역습이...'

 

종양에서 출혈이 생기면서 혈뇨가 나왔고

그게 굳으면서 방광에서 소변이 나가는 길을 막은 것입니다.

 

바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보내드렸습니다.

결국 입원하여 조직검사도 하고 콩팥암으로 진단 받았으며,

항암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2년전 수술만 했으면 문제없었을 것 같았는데 아쉽습니다.

더구나 투석을 이미 받고 계셨기 때문에 콩팥 하나 없는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항암치료를 시작한 후

그토록 당당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자신감없이 어깨가 축 쳐진 중년의 남성, 쓸쓸한 모습만 남았습니다.

항암치료 후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면서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4. 내가 그때 완전히 잘못 생각했구나

 

항암치료의 합병증으로 말초신경염이 와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한편,

한달 정도가 지나자 이제는 호흡이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이번에는 호흡이 힘들어 입원을 하게됩니다.

아마도 폐에도 수많은 전이 결절 때문일 것입니다.

한번 발동걸린 암세포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여기저기 옮겨다니고 증식하고 자라면서 정상 조직을 파괴합니다.

 

입원을 한 뒤 1주일도 안되어 투석실로 오셨습니다.

1주일만에 퇴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는데,

서류를 보니 본인이 치료를 모두 거부하고 자의로 퇴원했다고 합니다.

너무 갑갑하고 오히려 힘이 들었다고 하네요.

입원 중 검사한 내용을 보니, 역시 이산화탄소가 너무 많이 쌓여있었습니다.

 

폐는 기체교환이 중요합니다. 산소를 받아들이고 우리 몸에서 생긴 이산화탄소를 내보내야합니다.

이산화탄소는 그냥 내보낼 수 없고 우리몸의 근육과 에너지를 써서 힘껏 숨을 쉬어야 내보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기력이 없어 숨을 깊게 쉴수 없을 뿐더러,

폐 곳곳에 자리잡은 암세포 덩어리 때문에 폐혈류 순환도 잘 안되었을 것입니다.

이산화탄소가 쌓이면, 우리몸은 산성화됩니다.

또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의식을 잃게 됩니다.

결국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위급한 상태입니다.

 

이산화탄소를 자발적으로 내보낼 수 없으면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보통 중환자실에 입원해서 인공호흡기를 달게됩니다.

 

그럼에도 치료를 거부하고 퇴원하셨다는 것은...

여기 투석실에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산소를 드리면서 폐에 고여있는 수분을 제거하면서

스스로 호흡을 잘 하실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뿐입니다.

 

결국 수일뒤 임종하셨습니다.

 

강한 캐릭터와 가감없는 표현으로 때로는 당혹스러울 때도 기억나지만,

마지막으로 투석실에 오셨을때,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나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내가 그때 완전히 잘못 생각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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