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걸음걸이가 이상했던 할머니
7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70대 후반의 할머니 투석환자분이셨습니다. 투석 중에는 혈압도 떨어지지 않고, 체중도 적당히 늘어오시고, 검사 결과도 좋으신, 매우 안정적인 분이셨습니다. “할머니 괜찮으세요? 요새 불편하신 점은 없으세요?” 라고 여쭤보면, 항상 웃으면서 다 괜찮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투석실 주치의로서 그 분 앞을 지나갈 때 마음이 참 편했습니다.
어느날 투석을 마치고 집에 가시던 중 계단을 오르다가 넘어지셨고 다리를 다치셨습니다. 다음 투석에 오셨을 땐, 표정이 좋진 않았으나 “자긴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나 싶어 고관절을 눌러보니 “으악!” 비명을 지르셨습니다. 이 정도 통증이면, 골절이겠다싶어 바로 응급실로 가시라고 하여 X-ray 를 찍어보니, 역시 고관절 골절이었습니다. 그 즉시 입원하셔서 수술까지 받으셨습니다.
그 일이 있고난 후 할머니의 웃음과 항상 하시던 ‘괜찮다’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고관절 수술 후 휠체어를 타고 투석실을 왔다갔다 이동하셨는데, 침대에서 내려와 휠체어를 타시는 모습이 엉거주춤하니 힘이 없고 이상합니다. 게다가 말도 어눌하고 평상시와 다른 모습입니다. 역시나 할머니는 자긴 괜찮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영 느낌이 좋지 않아 머리 사진이라도 찍어보셨으면 좋겠다고 권유드리고 응급실에서 뇌 CT 사진을 촬영하였습니다.

헉… 뇌 출혈입니다. 뇌출혈이 심하지 않고 만성 뇌출혈이어서 급격한 증상으로 나타나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래도 두통도 심하고 증상도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견디셨을까 안타까웠습니다. 뇌출혈에 대한 치료를 모두 마쳤으나 이 후로도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병원에서 입원하여 투석을 받으셨습니다. 아직까지도 가슴 철렁했던 상황이 생생합니다.
투석 환자분들은 출혈에 약합니다. 요독증으로 인해 혈소판의 응집 기능이 약해진 탓도 있고, 투석기에서 혈액이 응고되는 것을 막기위해 헤파린이라는 응고방지제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요인입니다. 게다가 대부분 혈관 건강이 나쁘므로, 아스피린과 같은 혈소판응집 억제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혈압의 변동이 심하고 혈압이 높은 경우가 있으므로 쉽게 혈관의 손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투석 환자분들은 출혈이 잘 일어납니다.
투석 받으시는 분 중에서 뇌 신경과 관련된 증상이 있다면 뇌 CT 촬영을 주저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봅니다.

#2. 어지럼이 매우 심했던 할머니
70대 후반의 여성분입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월요일 아침에 투석을 진행하였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잔여 콩팥기능이 남아있는 분이어서 주 2회를 하고 계신분이고 다른 분들에 비해서도 투석시 안정적인 분입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투석 중반에 어지럼을 호소하면서 심한 구토를 하였습니다. 의식도 떨어져서 편으로 불렀을때 겨우 대답을 하는 정도였습니다. 혈압을 측정해보니 당시 혈압이 낮아 즉시 혈압을 올리는 응급 치료를 시행하였습니다. 하지를 높게한뒤 투석을 중단하고 투석기로 나와있던 혈액을 되돌리고 식염수를 빠르게 주입합니다.
혈압이 호전되고 의식이 좋아지는 듯 했습니다. 전보다 대답을 더 수월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눈을 못뜨고 말이 느리고 동작도 느립니다.
“어머니! 눈 좀 떠보세요. 제 목소리 들리시죠?”
눈을 힘겹게 뜨시긴 하나 이내 눈을 다시 감습니다.
“어지러워서 눈을 못뜨겠어.”
혈압도 다시 좋아지고 누워계신 상태인데 심한 어지럼을 느끼고 계십니다. 혈압이 떨어진 정도에 비해 의식저하, 구토, 어지럼이 너무 심하고 혈압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보호자 분을 호출하여 응급실로 가시도록 안내드렸습니다.
“아드님,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로 가보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 평소와 다르게 의식도 떨어지고 심한 어지럼을 호소하시는게 아마도 머리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응급실에서 정밀 검사를 통해 소뇌에 뇌경색이 확인이 되었고 즉시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소뇌는 우리몸에서 균형을 잡아 주는 핵심적인 부위로 소뇌에 문제가 생기면 심한 어지럼을 느낍니다.


#3. 투석 후 갑자기 다리 힘이 빠진 남성분
60대 중년 남성분입니다. 투석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걸어가던 중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이상하게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주저 앉게 된다고 합니다. 외래 진료를 보다가 급하게 투석실 간호사님 호출을 받고 투석실로 달려갔습니다.
정말 힘이 떨어진 것인지 다리 근력을 평가해봅니다. 5단계가 정상이고 숫자가 낮을 수록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중력을 거슬러 다리를 올릴 수 있으면 3단계 입니다. 그리고 제가 손으로 저항을 주는데 이 저항을 이겨낼 수 있으면 4단계 이상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왼쪽 다리가 중력을 거슬러 올리지 못합니다. 다리를 들어 버티지 못하고 축 처집니다. 즉 근력의 단계 중 3단계 미만입니다. 반대로 우측 다리는 쉽게 들어올리고 저항을 주어도 버텨낼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근력으로 판단됩니다.

오늘 투석하러 오실 때만해도 이러한 증상이 전혀 없었습니다. 갑자기 생긴 변화입니다. 뇌경색이 의심되므로 즉시 응급실로 안내하였고 뇌졸중이 진단 후 입원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이 후 재활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서 치료 중에 있습니다.

#4. 갑자기 사물이 2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을 호소한 여성
당뇨병으로 인한 말기신장병으로 투석 중인 중년의 환자분입니다. 이 분은 당뇨 합병증으로 당뇨발이 생겼고 감염 악화로 수 차례 발가락 절단 수술을 한 적이 있으며, 최근에는 무릎 아랫쪽까지 하지 절단 수술을 시행하고 의족으로 생활하시는 분입니다. 그만큼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고 혈관상태가 좋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쪽 눈의 통증이 생겼고, 한 쪽 눈을 뜨지 못하면서 사물이 2개로 보이는 복시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눈을 자세히 보니 양쪽 눈의 검은 눈동자의 모양이 이상합니다. 초점이 맞지 않으며 좌우 눈이 비대칭적입니다. 특히 한쪽 눈동자가 바깥으로 향해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3번 뇌신경 마비 증상입니다. 뇌에서 시작하는 12개의 신경이 있는데, 이를 뇌신경이라고 합니다. 그 중 3번 뇌신경은 안구의 운동과 눈꺼풀의 움직임을 관장합니다.

3번 뇌신경이 하는 역할은 눈꺼풀을 위로 올리게하여 눈을 뜨게합니다. 빛에 반응하여 동공을 축소시킵니다. 또한 안구의 운동을 담당하는데, 바깥쪽으로 눈동자를 돌리는 움직임을 제외하고 (6번 뇌신경이 담당)
나머지 방향으로의 움직임은 모두 3번 뇌신경이 담당합니다.

그러다 보니, 3번 뇌신경이 망가지면 (마비) 눈꺼풀을 위로 올리는 동작을 못하게 되고 (눈을 뜨지못하고 감고있음) 동공이 축소되지 못하니 반대로 확장되어 있으며 안구의 움직임 특히 안쪽으로 (코 방향) 으로 모으지 못해 눈동자가 바깥쪽을 향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사물이 두개로 보이는 복시가 나타나게 됩니다.
뇌경색 가능성이 있어 바로 응급실로 가시도록 안내드렸고 MRI 등의 검사 후 뇌의 미세한 혈관이 막혔다는 결과를 들었습니다. 현재 보존적 치료 후 복시 증상은 많이 호전된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