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의학용어를 사용하여 대화하는 의료진들, 그들은 환자인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나는 그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어 답답하고 무섭습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표정만 보고 짐작할 뿐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프로젝트에서는 각 질병에 대해 흔히 사용하는 의학용어와 치료에 관한 대강의 방향을 쉽게 설명하여 의료진들과의 의사소통을 더욱 쉽고 정확하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습니다. 다만 질병의 치료는 각 개인에 맞추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치료적 결정은 주치의와 상의하여야 하며, 본 코너에서는 큰 흐름만 설명할 것입니다.
[의사들의 대화 엿듣기] 4. 급성 신부전입니다. 입원하셔야겠습니다.
90세의 나이 많은 노인 환자 한 명이 응급실로 실려옵니다. 의식은 혼미하고, 몸은 깡 말라있습니다. 동행한 젊은 보호자에게 물어보니 같이 살긴하는데, 오늘 퇴근해서 와보니 기운이 없는 것 같아 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당직을 서고 있는 전공의들은 서로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분명 혈액검사나 기본 엑스레이를 찍어보면 무엇인가 중대한 질환이 있을 것 같은데 어느 분과로 입원하게 될지 다른 환자를 진료하며 곁눈으로 살펴보며, 걱정을 합니다.
일단 바이탈 사인 (활력징후 : 혈압, 맥박수, 호흡수, 체온 등의 기본적인 측정자료,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가장 중요하기도 합니다.) 은 혈압 90/70 으로 낮은 편이고, 보호자에게 물어보니 최근 몇 일동안 식사를 거의 안했다고 합니다.
이럴 경우 열이 나면 감염내과에서 긴장을 하고, 산소포화도가 낮고 엑스레이에서 폐렴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고 가래끓는 소리까지 들리면 호흡기내과에서 긴장을 합니다. 잘 못드시면서 검은색 변을 봤다고 하면 소화기내과에서 긴장을 합니다. 일단 열은 없었으며, 바로 찍은 엑스레이에서도 폐렴 의심소견은 없었습니다. 혈액검사는 채혈 후 1~2시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려 봅니다.
아뿔싸 혈액검사에서 크레아티닌 수치가 3.0 이라고 합니다. 응급실에서는 신장내과를 호출합니다. 졸지에 예상치 못한 콜을 받은 신장내과 당직의는 보호자를 다그칩니다. 식사를 못하셨으면 빨리 오셔야지 왜 이지경이 되도록 병원에 안오셨어요?!
위 환자의 병명은 일단 신부전입니다. 부전이란 의미는 장기의 기능이 떨어졌다는 의미로, 신장 기능이 떨어졌을 경우 신부전, 심장기능이 떨어졌을 경우 심부전 등으로 사용합니다. 영어로는 failure 를 붙여 '신장의' 라는 형용사 형태인 Renal 과 같이 사용하면 renal failure 라고 하면 신부전이 됩니다. (참고로 심부전은 Heart failure 라고 하고 약자로 HF 라고 많이 씁니다.)
만일 이 환자의 신장 기능이 이전에는 괜찮았다면 갑자기 신부전이 생긴 것이므로 급성 (acute) 을 붙여 급성신부전 (Acute renal failure) 이라고 하고 줄여서 ARF 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ARF 보다는 acute kidney injury 의 약자인 AKI 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그럼 크레아티닌 (Creatinine) 이란 무엇일까요? 근육에서 일정하게 만들어 내는 물질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장기능이 떨어져 급성신부전이 되었을까요?
신장은 혈액을 받아 노폐물과 잔여 수분을 소변으로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혈액이 온 몸을 돌다가 수십만개의 필터가 있는 신장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걸러져 나온 소변은 요관을 통해 방광으로 내려가고, 방광에 소변을 모아놓고 있다가 방광이 차면 소변을 보고싶은 느낌이 들어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소변을 봐도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방광이 수축하고 요도의 괄약근이 이완하여 소변을 밖으로 배출해내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변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지장을 받으면 신장의 기능이 떨어집니다.
첫번째는 신장으로 혈액이 잘 가지 않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Pre-renal AKI 라고 합니다.) 심장이 펌프질을 하여 콩팥으로 피를 보내주어야 하는데, 심장의 기능이 약해지면 신장도 기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를 Cardiorenal syndrome 이라고 합니다. 심장-신장 증후군) 또는 어딘가 출혈이 생겨 혈액이 부족하면 신장으로 피가 가지 않아 신부전이 생깁니다. 비슷하게 탈수가 심해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패혈증이 심하여 혈압이 떨어지면 이때에도 신장으로 혈액이 못가므로 신부전이 생깁니다.
두번째는 신장 자체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입니다. (이러한 경우를 Intrinsic AKI 라고 합니다.) 신장에 영향을 주는 약물이 매우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부루펜 계열의 진통제 입니다. 그 외 특정 항생제 등도 신장 기능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진통제를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오래 복용하고 신장이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참고로 타이레놀 계통의 진통제는 신장에 영향을 별로 주지않습니다. 그 외 CT 조영제, 근육이 파열되어 생기는 횡문근용해증도 신장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세번째는 신장을 빠져나온 이 후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입니다. (이를 Post-renal AKI 라고 합니다.) 방광에 돌이 있거나 남성의 경우 전립샘 비대가 심할 경우, 혹은 양쪽 요관에 동시에 요로결석이 생겼거나, 한쪽 콩팥만 있는데, 요로결석이 생긴 경우 급성 신부전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당뇨가 있는 분 중에서 방광의 기능이 좋지 않아 소변을 제대로짜주지 못해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소변이 역류하기 때문에 요관이 늘어나 있고, Back flow 로 인해 신장에 손상을 줍니다.
그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급성 신부전이 있다면 위 상황을 모두 고려해봐야 합니다.
그래서 Pre-renal AKI 를 배제하기 위해 탈수는 되지 않았는지, 출혈은 없었는지, 심장기능은 괜찮은지, 패혈증 상태는 아닌지 체크해봐야하겠습니다. 또한 소변검사를 하여 소변 내 나트륨의 양을 확인하면 참고가 됩니다. (FENa 라고 말합니다.)
Intrinsic AKI 를 배제하기 위해 약은 뭘 드셨는지, 건강보조식품은 뭘 드시는지, 최근 CT 를 찍지는 않았는지, 최근 무리하게 운동을 하거나 전기장판 같은 뜨거운 곳에서 주무시진 않았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Post renal AKI 를 배제하기 위해서는 요관이 늘어나있는지, 요로결석이 있는지, 방광이 늘어나 있는지를 보기 위해 신장초음파나 조영제를 쓰지 않고 CT 를 촬영하여 콩팥, 요로, 방광의 모습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소변을 본 후 잔뇨가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하여 방광기능은 괜찮은지를 평가합니다.
위 노인 환자는 어떤 것이 원인일까요? 최근 식사를 못하여 극심한 탈수로 인해 혈압이 낮고, 이로인해 신장도 기능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우선 심장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면서 수액과 영양제를 투여하여 탈수를 교정해보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왜 식사를 못했을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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