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틀 속에 가둔 환자

예민한 환자의 증상 호소

어느 평범한 아침, 평소보다 훨씬 일찍 환자분이 투석실에 오셨습니다.
“가슴이랑 등이 너무 아파요.”

당뇨 합병증으로 양쪽 시력을 잃은 분이었고, 평소에도 신경통으로 많이 힘들어하시던 환자분이었습니다.
신장기능도 소진되어 혈액투석을 받고계시며 거동도 불편하십니다. 특히 당뇨 신경병증으로 신경통이 심하여 통증에 대해 힘들어하시고 예민하게 느끼시는 분입니다.

상복부, 가슴, 등쪽이 아프시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그 날따라 외래 환자분들도 많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외래 진료를 잠시 중단시키고 환자분을 뵈었습니다. 증상이 심하니 바로 흉부 X-ray 와 복부 초음파를 확인하였습니다. 다행히도 흉부 엑스레이를 비롯해 간, 담도, 췌장, 담낭에 큰 이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긴급하게 시행했던 검사에서 큰 문제는 보이지 않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이전에도 흉벽에 신경통으로 치료 받았던 적이 있었고 당시에도 상당히 통증을 호소하였던 기억이 있어 이번에도 신경통이지 않을까 의심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전과 비슷한 양상의 통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신경통에 도움이 될만한 주사와 약물을 드렸습니다. 약이 듣기를 기대하며 조금 더 경과를 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듯 보였습니다.

“전에도 겪으셨던 신경통이 아닐까 싶어요. 검사에서 큰 이상은 없으시니 통증 조절만 하면 괜찮아지실 거에요.”

그러나 통증은 다시 악화되었고 결국 응급실로 전원하였습니다. 응급실에서 복부 CT까지 시행한 후 담도에 작은 돌이 발견되었습니다. 입원하여 담도 결석을 제거한 후 통증은 호전되었습니다.

인지적 오류의 위험

제롬 그루프먼의 ‘닥터스 씽킹’ 에는 의사들이 저지를 수 있는 여러가지 오류를 이야기 합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인지적 오류가 있습니다. 인지적 오류란 환자를 좁은 틀 안에 가두고 자신의 고정관념에 벗어나는 정보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한 번 방향을 정하고 나면 점점 그 생각을 확신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반대되는 정보들은 잘 보이지 않고, 결국 환자를 기존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춥니다. 그러면서 점점 왜곡된 결론에 집착합니다. 환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그 결론을 포기하기가 힘들어지고 환자는 전혀 맞지 않는 틀 속에 짜맞춰집니다.​

인지적 오류 중 대표성 오류 (representativeness error) 가 있는데, 하나의 원형에 사고가 이끌려 그 원형에 반하는 가능성들을 고려하지 못하고, 결국 증상의 원인을 잘못 짚으면서 발생하는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흉통으로 내원한 남성의 외모가 건강해 보인다는 이유로 심근경색 가능성을 배제하는 경우입니다.

​저 역시 비슷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통증에 예민한 환자’, ‘과거에도 신경통이 있었던 환자’, ‘초음파 및 엑스레이에서 큰 이상이 없는 환자’ 이런 정보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졌습니다. 통증에 예민하신 분이며, 과거에 비슷한 부위에 신경통이 있었던 병력이 있었으며 복부 초음파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었으니 이번에도 똑같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검사결과가 괜찮더라도 증상이 맞지 않다면 다른 여러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했어야 합니다. 아무리 복부초음파를 시행했다고 해도 초음파에서 보이지 않을 수 있는 작은 돌이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을 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경험이 쌓일수록 임상적 패턴을 빠르게 읽게 됩니다. 그것이 바쁜 진료 속에서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이 환자를 좁은 틀 안에 가두기도 합니다.

​전공의때 부터 지겹게 듣고 느꼈던 ‘아무리 검사결과가 좋아도 환자 상태가 나쁘면 의심하라.’ 라는 문구를 다시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슷하겠지’ 라는 생각은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환자를 너무 잘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환자는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집니다. 환자는 전혀 맞지 않는 틀 속에 짜맞춰지며 아주 중요한 신호를 놓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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