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투석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약 (updated)

투석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약

몇 해전 회진 중 한 환자분이 저를 불러세웠습니다. 그분은 침대에 누워 투석 중인 상태이고 저는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려나보다 생각하고 멈춰선 후 허리를 굽혀 귀를 기울입니다.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신문 조각 하나를 어렵게 꺼내 펼쳐서 저에게 보여주십니다.

“이 광고를 봤는데, 이거 먹어도 요?”

신문 광고 였습니다. ‘신장감염, 투석에서 완전 해방’ 제목을 보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투석에서 완전 해방이라니, 뻔뻔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칩니다.​



“이거는 비싸기만 하고 효과는 없을 것 같아요. 안드셨으면 좋겠어요.”

진지한 표정으로 제게 묻는 80대 노인분께 너무 부정적으로 말하면 실망하실까봐 최대한 절제하면서 말씀 드렸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사진을 찍어뒀다.

실제 제 속마음은…
‘이거 완전 사기에요. 사기. 이런 약이 있으면 벌써 논문으로도 나오고 교과서에서도 실렸겠죠. 아마 노벨상도 탔을 거에요. 저는 이때까지 투석에서 해방시켜준다는 약은 듣도보도 못했어요.
안타깝지만, 이미 망가진 콩팥을 살려내는 약은 아직 없어요. 절대 사지마세요. 절대 믿지 마세요!’

투석을 늦추는 약

투석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약은 없습니다만 투석 시기를 최대한 늦춰주는 약은 있습니다. 최근 몇 년사이 출시된 신약입니다. 아쉽게도 이미 투석을 시작하신 분에게는 소용없지만, 투석 받지 않는 만성콩팥병 환자분들께는 사용해볼 수 있는 약입니다.​

(1) SGLT2 억제제

소변으로 당이 배출되는 약입니다. 당뇨약으로 개발되었으나 콩팥 보호 효과가 입증되어 당뇨가 없는 만성 콩팥병 환자에게도 사용합니다. (단백뇨가 있는 만성콩팥병 환자)​

아래 그래프처럼 SGLT2 억제제를 사용하지 않은 그룹 (Placebo) 은 3년동안 빠르게 사구체 여과율이 감소한 반면, SGLT2 억제제를 사용한 그룹 (SGLT2 inhibitor) 의 경우 초반에는 급하게 떨어지는 듯 보이다가 이후에는 유지되어 약 12개월 뒤부터는 Placebo 그룹보다 신기능 악화 속도가 훨씬 느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Finerenone (케렌디아)

최근 등장한 또 하나의 중요한 약제가 finerenone 입니다. 콩팥과 심장에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염증과 섬유화를 줄여 장기의 손상을 늦추는 약입니다. 특히 당뇨병이 동반된 만성콩팥병 환자에서 신기능 악화 속도를 늦추고 심혈관 합병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만성콩팥병은 단순히 콩팥 수치가 나빠지는 병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콩팥 조직 안에 지속적인 염증과 흉터(섬유화)가 쌓이는 과정입니다. Finerenone 은 이러한 과정을 늦추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 약도 이미 망가진 콩팥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리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남아있는 콩팥 기능을 최대한 오래 유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투석에서 완전히 해방시켜주는 기적의 약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전보다 훨씬 좋은 약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혈압약과 식이조절 정도 외에는 방법이 많지 않았지만, 지금은 SGLT2 억제제나 finerenone 처럼 실제로 콩팥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약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검증되지 않은 광고를 믿는 것이 아니라, 콩팥 기능이 남아있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입니다. 투석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악화되면서 시작하게 됩니다. 아래 그래프처럼 만성콩팥병을 빨리 알아차리고 진행 과정 중에 빨리 적절한 약을 쓴다면, 투석까지의 과정을 최대한 늦출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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