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과를 선택한 이유

요즈음 시대에는 내과의 인기가 바닥입니다. 예전만해도 내과의 장점은 평균은 간다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평균도 안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내과를 선택했다고 하면 ‘왜 굳이 내과를 갔지?’ 라고 먼저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속상하지만 내과는 비인기과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2년전… 인턴을 마칠때쯤 나름 인기있는 몇몇 과에서 레지던트로 들어오라는 오퍼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과를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선택이었습니다. 의대 수업때부터 내과 공부가 흥미로웠습니다. 병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지, 그 병에 걸리면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지, 이 병은 어떻게 치료하는지. 이런 질병의 병태생리가 참 재밌었습니다. 공부하면서 인체 지식에 대한 깨달음이 있을 때 저에게는 큰 희열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빈혈 환자인데 적혈구를 봤더니 크기가 작다면 소구성 빈혈 (Microcytic anemia) 이고 보통 철분이 부족하여 생깁니다. 적혈구의 구성 성분인 헤모글로빈을 만들 때 필요한 철분, 즉 재료가 부족하여 생긴 빈혈일 때는 적혈구의 크기가 작고 색깔도 옅어집니다. 반대로 세포 분열에 필요한 조효소인 비타민이 부족하면 적혈구의 크기가 커집니다. (Macrocytic anemia) 세포분열이 지연되기 때문에 적혈구가 커지고 빈혈이 생깁니다. 심한 염증이나 조혈호르몬이 부족한 경우에 생기는 빈혈은 적혈구의 크기는 변화 없습니다.(Normocytic anemia)​



만일 피를 많이 흘린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를 들어 위궤양으로 출혈이 생겼거나 사고가 났을 때) 혈액검사를 한다면 빈혈은 보이지 않습니다. 혈액의 양은 줄었지만 혈액의 농도는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혈액검사에서 빈혈로 나타나게 됩니다. 피를 많이 흘렸을 경우 우리 몸은 체액 소실에 대해 보완하기 위해 심장은 더 빨리 뜁니다. 심박수가 증가하여 보상을 하지만 출혈이 계속되면 혈압도 떨어집니다. 위 궤양 출혈로 혈액이 위에 고이면 혈액 속 단백질이 소화흡되면서 혈액 검사에서 요소(Urea) 수치가 상승합니다. (단백질이 소화되면 최종적으로 요소가 생깁니다.) 또 혈액 속 철분이 위장을 타고 내려오면서 산화되어 검은변이 되어 나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안색이 창백해보이면서 속이 울렁거리고 쓰리다고 하고 맥박은 빠르고 검은색 변을 보았다고 한다면 너무나 명확하게 위 궤양 출혈을 먼저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임신을 하면 임산부의 몸이 태아를 위해 바뀝니다. 태아에게 혈액을 공급하기 위해 혈액량이 증가합니다. 태아에게 영양(포도당)을 공급하기 위해 모체의 혈당도 임신전보다 상승합니다. 또 임신 초기 태아에게는 갑상선 호르몬이 중요합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충분해야 태아의 신경계가 잘 발달합니다. 우리 몸은 갑상선 호르몬의 분비를 뇌에서 조절하는데, 뇌에서 TSH 가 분비되면 갑상선에서 이를 인지하여 갑상선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임신 시 태반에서는 TSH 와 구조가 유사한 태반호르몬이 나옵니다. (hCG) 이 태반호르몬이 갑상선을 자극하여 임신시 모체의 갑상선에서는 갑상선 호르몬은 더 많이 분비됩니다. 또 임신을 하면 모체의 면역이 억제되는 쪽으로 변화합니다. 왜냐하면 모체 면역의 입장에서 봤을 때 태아는 나와는 다른 적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아를 공격하지 않기 위해 모체의 면역이 억제되고 나와 다른 태아를 허용하는 쪽으로 바뀝니다. 따라서 기존에 이미 자가면역질환 (내 면역이 나를 공격하는 질환) 이 있다면 임신 후에는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이 완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적어보았습니다. 이런 인체의 신비한 지식들을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곳이 내과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적인 호기심, 깨달음을 가장 충족시켜줄 수 있을 기대를 가지고 의대생때부터 나는 내과를 해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내과가 아닌 다른 과는 별로 흥미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내과를 선택한 두번째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몸이 아플 수 있습니다. 내 건강은 중요하기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다면 이에 대해 상담을 받고 싶습니다. 근처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으면 되지만 툭 터놓고 길게 이야기할 수 있는 병원이 별로 없습니다. 의대생때부터 주변 친구, 친척, 부모님의 지인… 친구의 친구까지 건강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귀찮을 수도 있고 때로는 내 능력밖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습니다. 내 지식으로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내 존재의 이유를 알려주는 것 같았고 뿌듯했기 때문입니다. 수술로 불편한 부분을 즉각 치료하여 해결하는 과는 아니지만 넓은 의학적 지식으로 누군가와 상담하기 좋은 과가 내과인 것 같습니다.​

손닥터 블로그로도 이메일 및 방명록, 댓글로 상담을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해외에서도 메일을 보내 상담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쉽게도 의학이라는 것이 직접 뵙고 진찰을 하고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온라인 상으로는 상담할 수 있는 것이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따로 상담을 받지는 않으나 저에게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상담해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설명이 너무 길어서 다음 순서 환자분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들어오면서) 어휴 선생님 앞사람 왜이렇게 오래 있어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분은 건강이 좋지 않아 설명할 것이 많았습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네요. 죄송해요.”

내과를 선택한 세번째 이유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전공의 수련을 받으면서 힘들었던 것이 응급실에서의 신경전입니다. 응급실에 코피가 멈추지 않아 내원한 환자가 왔다면,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보면 됩니다. 간단합니다. 그런데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환자가 오면 전공의들끼리의 신경전이 펼쳐집니다. 예를 들어 80세 할아버지가 대퇴골 골절로 응급실로 내원하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통증이 심해 얼굴을 찡그리고 신음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흉부 X-ray 에서 폐렴이 확인됩니다. 열도 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응급실에서는 정형외과, 호흡기내과를 호출할 것입니다. 정형외과에서는 아마도 ‘폐렴을 먼저 치료해야 고관절 골절에 대해 수술을 할 수 있으므로 내과에서 입원시키십시오.’ 라고 할 것입니다.​

그 80세 할아버지는 결국 호흡기내과로 입원을 합니다. 입원하여 자세히 검사를 해보니 고관절 골절과 폐렴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발견됩니다. 검사상 우연히 뇌종양이 발견되었고, 담석도 확인되었으며 콩팥 기능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는 환자들을 내과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여러 과들과 협진을 하면서 올바른 치료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습니다. 다른 과들은 입원시키지 않은 환자, 내과에서는 어떻게든 치료한다는 점이 내과의 낭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와 달리 지금 내과는 인기 있는 과는 아닙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더 힘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시 의대생으로 돌아가 전공을 선택하라고 해도 저는 아마 또 내과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인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즐거움, 누군가의 건강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설명해주는 보람, 그리고 여러 문제를 가진 환자를 중심에서 이끌어가는 역할은 여전히 저를 설레게 합니다. 내과는 화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이해하고, 질병을 이해하고, 삶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저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분야입니다. 그래서 저는 내과를 선택했고,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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