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손닥터가 투석의원을 개원하려는 이유

저는 월급받는 의사로 수도권의 규모있는 투석의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안정적이기도 하지만 특히 오랫동안 같은 투석환자분들을 진료하면서 그 분들과 추억도 많이 쌓이고 정이 많이 들어 7년째 같은 곳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투석환자분들을 진료하면서 느끼는 점은 겉으로 봤을 때는 건강해보이더라도 아무래도 질환의 특성상 면역력이 약하다는 점입니다. (의학적으로는 단순히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이 글에서는 ‘면역력이 약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단순히 감기인 줄 알았는데 금세 폐렴으로 진행되기도 하고, 잘 지내시던 분이 다음날 응급실 통해 입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따라서 투석실 진료 의사로서 환자분들의 미세한 초기 변화를 알아채고 빠르게 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비행기의 방향이 각도 1도만 틀어져도 전혀 다른 목적지에 도착하듯, 각도 1도 차이가 나중에 큰 폭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하게 잘 지내시던 분이 갑자기 발열이 있으면서 평소보다 혈압이 뚝 떨어져 보인다면, 심각한 질환인 ‘패혈증’ 가능성은 없을지 생각하고 가능성이 높다면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합니다. 미세한 초기 변화를 인지하려면 투석실 담당 의사는 해당 환자분의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어떤 병이 있는 분인지
  • 최근에 어떤 문제로 입원한 적이 있는지
  • 무슨 수술을 받은 분인지
  •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 평소 혈압, 혈당 상태 및 투석 중 이상 소견은 없었는지
  • 현재 생활습관은 어떠한지
  • 어떤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는지
  • 혼자 사시는지, 가족들과 같이 지내시는지 등

그러려면 환자분의 의무 기록은 물론, 평소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하고 기억하고 기록해야 합니다.

하지만 투석실은 특이하게도 형식적인 최소한의 진료만 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력있는 투석실 간호사 분들이 필수적인 최소한의 조치는 다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투석의 시작부터 종료때까지, 투석 중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해 조치할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정 안되면 투석을 그냥 중단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투석실은 투석실 의사가 회진을 대충 돌거나 거의 돌지 않는 곳도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잘 운영되는 투석실 보다는 외래 진료에 비용과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수익성 측면에서도 그렇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투석실 진료에 덜 관심을 두고, 시간을 덜 쓰면 결국 문제가 터집니다. 강둑의 손가락만한 구멍이 점점 커져 나중에는 손바닥으로도 막을 수 없는 크기가 됩니다. 투석실 의사의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처럼 직접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지만 여러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방향을 잡아줍니다. 투석실 각 영역의 운영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각각의 환자분들이 건강한 삶을 오랫동안 유지하도록 미리미리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도의 각도가 틀어진 것을 조기에 발견하여 나중에 큰 문제가 되기전에 바로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외래 환자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외래로 오시는 몸이 아픈 환자분들도 한분 한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이전처럼 투석실 환자분들에 대해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죄송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투석실 환자분들께 충분한 시간을 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다고 병원에 소속된 의사 입장에서 외래 진료를 줄이거나 안볼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체계를 현재 바꾸기가 참 어렵습니다.

또 어떤 좋은 약이나, 주사가 출시되어 적용하고자 할 때, 병원의 규모가 있다보니 여러 단계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새로운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바로 적용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수익성을 따질 수 밖에 없고 여러 명의 결제권자를 설득해야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절차가 너무나도 번거롭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전부터 계속 상상해왔던 투석의원의 모습이 있습니다.

  • 혼자서 운영할 수 있는 크지 않은 적당한 규모의 투석실
  • 내과 외래환자도 진료하지만, 좀 더 투석환자분들께 시간을 쓰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적 여백
  • 외래환자 및 투석환자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여유
  • 내집같은 따뜻함이 느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
  • 좋은 약제 및 주사, 시스템을 필요할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곳

환자분들의 작은 표정 변화 하나를 놓치지 않는 병원, 투석하는 시간이 단순히 치료를 받는 시간이 아니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까지 쉬어갈 수 있는 병원이 제가 상상하는 병원의 모습입니다. 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 10년, 20년 이상 함께하는 치료입니다. 아마도 저는 그 분들 옆에서 그 분들과 함께 세월이 가고 늙어갈 것입니다. 결국 환자분들의 작은 변화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방법은 최신 장비가 아니라, 환자분들에게 관심을 갖고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주 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투석실이 병원이라기보다 또 하나의 일상이 되고 편안한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오면 참 마음이 편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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