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때 가장 싫어했던 내과 과목이 신장내과였습니다. 계산식도 많고 계산할 것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장내과 교수님 특유의 별거 아닌 것도 집요하게 지적하는 그런 분위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신장내과 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요?​

‘나는 적성이 내과야.’ 내과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내과로의 진로는 사실상 결정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과 전공의가 된 이 후 내과의 수많은 분과 중 어디를 택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종양내과가 참 좋았습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들. 그들이 모여있는 항암 병동은 우울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병동보다 활기가 넘치는 곳입니다. 알록달록한 두건을 서로 나눠 쓰고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봅니다.​

암 말기 환자분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에는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분들이 있습니다. 얼마전까지 즐겁게 대화하던 환자분이 눈앞에서 죽어갈때, 의사로서 그저 통증을 조절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고 고통스러운 임종이 되지 않도록 지켜볼 수 밖에 없을 때,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휩싸이게 됩니다. 또 종양내과는 퇴원을 빨리 시키려는 분위기가 없어서 좋았습니다. 소화기내과 같은 경우는 보통 내시경을 하여 진단과 치료가 마무리 되면 빠르게 퇴원을 종용하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소화기내과 특성상 회전율 (입원-퇴원) 이 빠른데 전공의로서 환자분들의 퇴원일정을 조율해야 할 때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종양내과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종양내과는 규모가 큰 종합병원에 있어야 합니다. 지역 1차 의료기관에 종양내과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종양내과는 여러 과의 도움이 있어야 빛을 발하는 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학병원은 하루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외래진료에서 환자분들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대화할 수 없습니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가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1차 의료기관이나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 환자분들과 직접 마주하며 시간에 쫓기지 않고 충분한 시간 동안 진료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환자분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제 설명에 귀기울이고 변화되는 환자분들을 보며 큰 보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는 호흡기내과 전공의를 할 때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호흡기내과 전공의를 할 때였습니다. 당시 호흡기내과는 입원 환자수가 많기로 악명 높았습니다. 전공의 입장에서는 무척 힘든 과였습니다. 일과 시간에는 병동 환자의 예정된 검사 및 치료가 잘 진행되도록 조율하는 한편, 상태가 좋지 않은 병동 환자를 진료하고 또 응급실 환자를 봅니다. 그러면 전체 입원환자분들의 상태를 체크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퇴근은 포기하고 (당시에는 1, 2년차 내과 전공의에게 퇴근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저녁 7시 부터 나만의 회진을 떠났습니다. 느긋하게 병동을 돌아다니면서 입원환자 한 분 한 분을 만나며 그 분들을 살펴보고 불편한 점은 없는지 대화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 교수님 회진은 빨리 끝납니다. 왜냐하면 환자분들이 교수님에게 말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불편한 것들, 필요한 것들을 이미 그 전날 저녁에 제게 다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 회진때 저는 교수님 뒤편에 서서 환자들과 눈빛을 주고 받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입니다.​

내과에는 여러 분과가 있기 때문에 내과 전공의는 3개월씩 각 분과를 돌며 수련을 했습니다. 제가 수련할 당시 내과 전공의 과정은 4년이었기 때문에 (현재는 3년) 총 12번 이상 과를 바꾸며 수련할 수 있습니다. 내과 전공의는 수련하는 입장이므로, 가능한 다양한 분과를 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 전공의별로 매년 본인이 희망하는 수련 스케줄을 신청을 받고 최대한 거기에 맞춰 최종 스케줄을 통보합니다.​

제가 수련했던 대학병원 신장내과에는 굉장히 엄격하고 기준이 높은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과거 대한신장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셨을 정도로 굉장한 실력과 지식을 갖추신 분이었지만, 전공의에게는 너무나 엄격하시고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저 또한 전공의 2년차 시절 신장내과를 수련하면서 ‘수련을 그만둬야 하나?’ 하고 고민할 정도로 참 힘든 수련시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공의 중 누구도 이 곳 신장내과를 지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수련 스케줄을 짜는 수석 전공의 입장에서도 아무 전공의나 신장내과에 집어넣으면 나중에 크게 욕을 먹기 때문에 곤란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만만한 제가 2년차, 3년차, 4년차때 모두 3개월씩 신장내과 수련을 받게 됩니다. (1년차 때는 원래 신장내과 수련 스케줄이 없었습니다.)​

사람은 적응의 존재였던가요. 2년차때만 해도 욕먹고 혼나기 일쑤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익숙해집니다. 3년차, 4년차를 거치면서 완성형 신장내과 전공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또 신장내과 수련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투석이란 치료에 대해 매우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숨이 차고 금방이라도 잘못될 것 같은 그런 힘든 표정의 환자분이 투석이라는 치료 후 너무나 빠르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고 묘한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또한 외래 투석실에서도 월/수/금, 화/목/토 요일별로 매번 같은 환자분들이 내원하시니 그 분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듣고 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점도 참 좋았습니다. 지방에 부모님이 계시고, 주말 부부였던 저에게는 가족보다도 더 자주 만났던 투석환자분들이었습니다.​

4년차가 지나갈 때쯤 (4년차 마지막 수련 스케줄도 결국 신장내과) 신장내과를 선택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가족보다도 더 자주 만나는 투석환자분들의 눈빛, 표정만 봐도 대략 어떤 상황인지 느낌이 옵니다. 투석을 시작하시고 그 전에는 엄두도 못냈던 장거리 여행, 친구들과의 만남, 자신있는 외출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또 외래 진료에서는 콩팥이 나빠지기 시작한 시점의 환자들을 만나 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콩팥이 더 빨리 나빠지지 않도록 치료하는 순간이 참 보람있습니다.​

신장 투석 의사로서 살아온지 어느덧 10여년이 지났습니다. 의대생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신장내과였습니다. 계산도 많고 어렵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던 과도 신장내과였고, 가장 많은 환자분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곳도 신장내과였습니다. 저는 환자와 오래 관계를 맺고 반복해서 만나며 변화를 함께 보는 진료를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신장내과와 투석실은 그런 제 성향과 가장 잘 맞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도 투석실에서 환자분들을 만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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