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제 관점에서 적어보려고 합니다. 투석실을 지키는 의사로서 언제 뿌듯함을 느꼈는지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1) 좋아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
투석 치료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 효과가 확실하다는 점입니다. 물리적으로 필터를 통해 걸러내니 이보다 확실한 치료는 없을 것입니다. 투석의 마법같은 효과입니다. 투석을 시작하시고 환자분들이 점점 좋아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요독이 제거되니 가려움도 덜하고 잠도 잘 주무십니다. 식욕이 돌아 음식이 참 맛있어집니다. 몸 속에 과도하게 많았던 잔여 수분을 제거하니 붓기가 빠집니다. 다리가 퉁퉁 부었었는데 붓기가 없어지고, 얼굴에도 예전 건강했을 때의 윤곽으로 돌아옵니다. 폐에도 과도한 수분이 남아있다가 투석으로 빠져나가니 숨쉬는 것도 가벼워집니다. 약을 많이 드셔도 혈압이 높았는데 투석 후에는 혈압이 낮아져 혈압약을 많이 줄이게 됩니다. 혈액 검사도 좋아지는 모습이 확실히 보입니다. 빈혈이 좋아지니 혈색이 돌고 몸이 가볍습니다. 활력이 생깁니다.
처음 투석실에 들어오실 때의 기운없는 모습과 몇 달 뒤 건강해지고 밝아진 표정. 환자분들이 건강을 되찾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투석실 의사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보람입니다.

(2) 이곳을 편안하게 생각하실 때
때때로 투석받는 환자분들은 어떤 질병으로 인해 입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원 중에도 투석은 중요하므로 꼭 스케줄에 맞춰 투석을 받습니다. 간혹 예정된 일정보다 한참을 일찍 퇴원을 하여 이곳 투석실로 복귀를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이고 수술하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수술은 잘 받으셨어요?”
“아니 마음이 불편해서. 나는 여기가 제일 편해. 여기만 오면 마음이 놓여. 거기서 투석 받으면 불편해. 그래서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했어.”
병원은 원래 불편한 곳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오는 곳이고, 누구나 병원 보다는 집이 더 편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여기가 제일 편하다”는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투석이라는 힘든 치료를 받는 공간이지만, 적어도 이곳만큼은 마음 놓고 쉬어갈 수 있는 장소, 든든한 느낌이 드는 장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3) 직장 출근,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실 때
투석을 받기 시작한 후 3~4개월이 지나면 투석에도 적응이 되면서 확실히 몸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건강에 대한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러면 젊은 분들은 이제 직장을 구하시고, 또 출근을 해야하니 야간 투석 스케줄로 옮겨달라고 요청하시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의 경우 투석을 받으신 후 건강 상태가 회복되면 자녀들이 어머니(또는 아버지)를 모시고 그 동안 엄두도 못냈던 근처 교외로 여행을 가시기도 합니다.
투석의 목표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직장에 출근 계획을 이야기하시고, 여행 일정을 상의하시고, 여행 다녀와서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참 뿌듯합니다.

(4) 신장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
갑자기 한 환자로 부터 연락이 옵니다.
“이식 대기를 하라고 연락이 왔어요. 오늘 투석 못갈 것 같아요.”
“네 알겠어요. 잘하고 오세요. 이번에 꼭 이식 수술 받았으면 좋겠어요. 연락주세요!”
투석을 시작하고 KONOS 에 뇌사자 이식 등록을 하신 분입니다. 이번에 뇌사자가 발생하여 이식 수술을 위해 빨리 대기해달라는 연락을 받은 것입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이식받으실 분을 2명을 호출하여 대기하도록 합니다. 1순위 후보자가 이식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나면 2순위 후보자에게 이식을 하기 위함입니다.
보통 뇌사자 이식 등록 후 실제 이식을 받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보통 7년에서 10년까지 걸린다고 하니 얼마나 간절한 기다림일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병원에서 투석 받으시는 환자분이 이식까지 하게되면 아쉽게도 더 이상 투석 받으 내원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이식 수술은 이별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이별입니다.
성공적으로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환자분들은 대부분 병원을 찾아주십니다.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하고 콩팥과 관련된 상담을 위해 오시기도 합니다. 이식 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뵙게되면 참 뿌듯합니다. 그 동안 투석을 잘 받으시고 건강 관리도 철저히 하셔서 수술까지 문제없이 잘 견뎌내셨을 것입니다.

투석실은 특별한 공간입니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 또는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주 3일 같은 분들을 수년, 수십년 동안 반복해서 만납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의사-환자의 관계를 넘어, 삶의 여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누군가는 다시 직장에 복귀하고, 누군가는 가족와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는 오랜 기다림 끝에 신장이식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의 여정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는 것이 투석실의 특별한 매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