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아찔한 순간

40대 젊은 환자분이 새로 오셨습니다. 최근에 투석 치료를 시작하고 정기적인 유지투석을 위해 집근처 병원으로 오신 것입니다. 처음에 새로운 환자분이 오시면 으레 여쭤보는 질문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원래 콩팥이 안좋은지 알고 계셨나요?

2. 어떤 질환으로 인해 콩팥이 나빠졌나요?

3. 어떤 증상이 있으셔서 투석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4. 아니면 정기적으로 검사 하시다가 투석 시작할 때가 되어 시작하신건지?

5. 처음 투석을 시작하시면서 특별히 불편한 증상은 없으셨나요?

 

등의 질문을 드립니다. 이 분의 경우 젊은 나이지만, 당뇨, 혈압이 있었고 콩팥이 좋지 않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콩팥이 더욱 나빠져서 투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호흡곤란이나 부종, 요독증상 등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늘 처음 방문이 아닙니다. 10개월 전에 이곳 병원에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그 당시 기침과 몸살 증상으로 내원하였습니다. 기저질환으로 당뇨와 혈압이 있다고 하셨지만, 그 때 콩팥에 대한 말씀은 없었습니다. 콩팥이 점점 나빠지다가 최근에 결국 투석을 시작하였다고 하니 10개월전 여기 오셨을 때에도 이미 콩팥 기능이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단순 감기증상으로 오신 외래 초진환자분 모두에게 혈액검사를 다 할 수 없고 비교적 40대의 젊은 분이었기 때문에 신장기능에 대한 고민없이 간단히 감기약을 우선 처방해 드렸습니다. (코로나 검사는 음성 확인)

 

몸살이 있는 경우 진통효과가 있는 약제를 흔히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약으로 진통소염제 (NSAIDs) 와 타이레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약을 사용합니다. 타이레놀 성분의 약이 속쓰림 등의 부작용이 없어 좋긴 한데, 간혹 몸살이 심한 경우 타이레놀에 듣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하신 젊은 분에게는 NSAIDs 성분을 단기적으로 처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NSAIDs 의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신장기능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장기능이 좋지 않은 분들이 이 진통소염제를 드실 경우 신장 기능의 악화가 두드러질 수 있습니다. 보통 콩팥 기능(사구체여과율)이 10점 이하면 투석을 시작하는데, 만일 콩팥 기능이 20점 정도인 만성 신장질환 환자분이 이 진통소염제를 남용할 경우 (일시적일 수 있지만) 10점 이하로 떨어져 투석치료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또 이러한 진통소염제를 장기복용 했을 경우 콩팥 기능의 저하가 지속되어 다시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환자분께는 타이레놀로 드리긴 했는데, 만일 그 때 (신장이 안좋은 상태인줄 몰랐으므로) 젊고 건강해보인다는 이유로 NSAIDs 를 처방했었다면 콩팥 기능의 급격한 악화를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갑자기 아찔한 느낌이 듭니다.

 

젊고 건강한 분이라도 콩팥을 나쁘게 할만한 기저질환이 있다면 콩팥 기능이 나쁠 수도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주지해야 할 것입니다. 또 환자 입장에서도 본인의 기저질환과 콩팥 손상의 정도 (만성콩팥병 단계 또는 본인의 사구체여과율) 정도는 기억해두었다가 다른 병원에서 혹시 진료를 받게 될 때에는 꼭 이야기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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