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 #2.

# 전공의 때 기억

응급실에서는 생명이 위태롭게 꺼져가는 환자를 종종 자주 만나게 된다.

아마 내과 응급의 꽃은 패혈성 쇼크(septic shock) 일 것이다.

어느 중년 여성분이 요로감염으로 인한 패혈성 쇼크로 내원했다.

의식은 명료하진 않다. 대화가 잘 되지 않고 졸려한다.

Cr 수치가 4.1 이다. 이럴때는 신장내과가 맡는다.

시장통 복잡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가는 입원장을 발부한다.

중환자실 자리가 정리 되면 환자는 침대차를 타고 주렁주렁 수액줄을 달고 응급실을 떠난다.

환자가 중환자실 입구에 도착하면 중환자실 베테랑 간호사분들이 와서

척척 수액 라인을 확인하고 정리하고 환자 옷을 갈아입히고 침대로 훌쩍 날아 이동한다.

환자는 위태롭지만, 중환자실로 오면 일단 주치의 마음은 편해진다.

위태롭고 연약한 환자는 시시때때로 활력징후 모니터의 알람이 울려댄다.

혈압이 낮다고 알람이 울리면 승압제를 용량을 조절하고 수액속도도 조절한다.

소변량이 얼마나 나오는지 노심초사 텅 비어있는 소변통을 노려본다.

소변량은 무척 적다. 소변색은 매우 진하다. 소변줄에 약간의 소변이 맺혀있다.

나올듯 말듯한데, 수액치료를 시작한 후 약간 소변량이 늘어난 것 같다.

아! 투석을 시작 해야하나 계속 고민이 된다. 제발 소변아 나와라.

퇴근시간이 다가오지만, 어차피 퇴근 후에 일정은 없다. 약속을 잡지도 않았다.

신혼이지만 주말부부다. 의국 당직실이 내 집이다. 원룸 월세값을 아낄 수 있다.

중환자실 구석 컴퓨터 자리에 자리를 잡는다.

왠지 이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편하다. 환자분의 상태가 한눈에 보인다.

한 줄 한 줄 처방을 써 내려간다.

응급실에서 준구난방으로 적어놨던 처방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훌쩍 먹고 병동 환자분들을 간단히 돌아본다.

환자분들에게 오늘 했던 검사결과와 내일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드린다.

최종 종착지는 중환자실이다. 면회시간인지 중환자실 입구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아까 응급실에서 입원한 요로감염 패혈증 신환의 보호자도 와있다.

근심가득한 표정의 보호자분에게 설명을 드렸다.

환자분의 혈압은 조금 올랐다. 모니터에 101/55 라고 찍혀있다.

아직 빈맥은 있으나, 혈압이 올라가 기분이 좋다. 좋은 징조다.

소변통에도 소변이 조금 고여있다. 시간당 10cc 가 나왔다.

아예 안나오는 것 보다 훨씬 낫다.

잠깐 쉬었다가 밤에 다시 중환자실로 왔다.  시간은 밤 10시가 다 되었다.

중환자실 컴퓨터 자리에 앉아 입원환자분들의 내일 정규오더를 낸다.

옆자리에는 동기가 쾌쾌한 눈을 비비며 앉아있다.

아까 낮에 응급실 많이 찍히던데 힘든가 보다.

패혈증 환자의 혈압은 더 올랐다. 115/60 이다. 소변량도 좀 더 늘었다.

'아 감사합니다. 드디어 소변이 나오나보다. 이제 살았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다시 승압제 속도와 수액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한다.

오늘 당직이 아니라서 그나마 여유가 있다.

평범한 내과전공의 2년차의 하루 일상이다.

 

# 부족한 2%

환자들은 교과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로지 눈에보이는 검사결과만 믿어서도 안된다.

검사 결과는 다 좋은데 환자의 모습이 좋지 않다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실제 환자가 급성기 질환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보면 의사로서 내 역할이 그리 크지 않음을 느낀다.

처음 잘못된 진단으로 잘못된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환자 고유의 회복력으로 쉽게 회복되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적절한 진단과 최선의 치료를 시행하였음에도 결국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지는 환자들도 있다.

아마도 환자의 회복에 있어 의사로서 내 지분은 넉넉잡아 10% 정도 될까 싶다.

물론, 사경을 헤매는 중환자분들의 경우 1%, 1%가 참 소중하다.

올바른 항생제를 선택하면 3%, 적절한 영양을 공급하면 2.5%, 

환자 옆에서 시간을 쓰며 정성을 다하면 2%가 적립되는 식이다.

처음에는 작아보여도 나중에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인공지능이 이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을까?

의대 증원이 이 부족한 2%를 채울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 낭만 전공의

전공의때 생활은 의사에게 있어 한때의 추억이자 낭만이 되는 시기이다.

남자들이 군대생활을 회상하며 뿌듯해하는 것처럼

전공의 레지던트의 시기도 고생스럽지만 성장하는 기쁨이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전공의 시절이 낭만이 되려면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어야 한다.

바로 시간의 테두리다.

군대도 2년 (나도 24개월 만기 육군 병장으로 전역했다.) 이란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견딜 수 있는 것처럼

전공의도 4년이란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참아내고 견뎌낼 수 있다.

1년차에서 2년차로, 다시 3년차에서 4년차로.

연차별로 수행할 수 있는 업무와 술기가 다르고 능력도 다르다.

내과 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을 때는

이제 모든 내과 환자를 다 진료할 수 있을 자신감이 생긴다. (물론 크나큰 착각이었지만.)

누군가에게  평생 전공의 업무를 대신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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