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단상 #3.

# 젊은이들의 각성

90년대 내가 어렸을 때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무조건 결혼을 해야하는 줄 알았다. 결혼하면 아이는 무조건 둘 이상 낳게되는 줄 알았다. 외동인 친구들이 불쌍했다. '혼자라서 심심하겠다.', '외동이니 자꾸 놀자고 하는 구나. 외롭겠다.' 이렇게 생각했었다. 30년 뒤 2020년대가 되었을 때, 결혼하는 사람이 특별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는 부부는 선택받은 특별한 부부였다. 결혼안 한 사람들이 결혼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제 젊은이들은 각성한 것이다. '세상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구나. 아니 결혼하면 안되는구나, 애를 낳으면 안되는구나.'

 

# 전공의들의 각성

2010년 초반 의대를 졸업할 당시 졸업 하면 무조건 인턴, 레지던트를 해야 하는 줄 알았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아는 것도 없는데 인턴도 안하고 어떻게 실제 진료를 해?' 정말이다.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면허증만 획득해서는 실제 진료는 힘들다. 모형으로 수없이 완벽하게 연습했던 소변줄 꽂는 술기를 인턴이 되어 처음 할 때 얼마나 진땀을 흘렸던가. 모형과 실제 사람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런데 인턴조차 하지 않고 개원을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선배 중에 한 명이 그랬고 후배 중에 한 명이 그랬다. 특수한 케이스겠지 하고 넘겼다. '아는 것도 없는데 인턴도 안하고 어떻게 실제 진료를 해? 당연히 인턴을 해야지, 당연히 전문의는 따야지.' 이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인턴 첫달 월급이 통장에 들어왔다. 130만원. 너무 기뻤다. 알바가 아닌 정식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 상당 부분을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그리고 나서 SNS 를 봤다. 인턴도 안하고 미용으로 개원한 선배다. 이번에 외제차를 뽑았다고 한다. 고급 중에 고급 브랜드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이 후 전공의를 하지 않고 미용, 통증으로 취업하거나 개원하는 후배들이 점점 늘어났다. 최근 의대증원사태로 전공의들이 병원을 나갔다. 의대 졸업 후 어~ 하다보니 인턴, 어~ 하다보니 레지던트를 하고 그랬었는데... 전문의 안따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바깥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돌아볼 여유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 대학병원에 남아 스텝이 되곤 했는데... 이제 전공의들이 각성하게 되었다. '세상은 전문의를 따지 않아도 괜찮구나. 아니 전공의를 하면 안되는구나. 전공의 하면 오히려 손해구나.'

 

 

# 영국 기사

인터넷 뉴스를 보던 중 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영국에서 33세의 젊은 여성이 배가 부르고 구토가 있어 임신인가 싶었는데 암이었고 2달만에 사망했다는 기사다. 선암이라고는 하나 어느 장기 기원인지는 나오지 않았다. 실제 영국 데일리메일 원문 기사 내용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Cancer-stricken mother, 33, who thought she was pregnant dies weeks after doctors discovered her bloating and vomiting was stage-four tumour. A young mother has died from cancer just weeks after mistakenly believing she was pregnant. Fiona Gallacher, from Holytown in North Lanarkshire, suffered from severe stomach ache, bloating and vomiting for two months. After a pregnancy test came back negative in January, the 33-year-old visited A&E(Accident and Emergency). Test results days later revealed she was suffering with stage-four adenocarcinoma, an aggressive cancer of the glands that secrete mucus. Doctors originally gave her between six months and a year to live when Ms Gallacher was diagnosed in January. She died just 11 weeks later, on March 22.

 

위 내용에서 보듯, 여성은 심각한 복통과 복부 팽만감 및 구토를 2달동안 앓았다고 한다. 이 부분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두 달동안이나 참아야 했을까? 임신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 실제로 복부 팽만감으로 병원에 많은 분이 내원하신다. 대부분 변비나 위장장애가 많지만 실제로 간경화로 인한 복수나 난소암 같은 심각한 문제의 복부 팽만 환자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렇게 두 달이나 참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나라 의료환경으로 바꿔보자.

 

요 며칠사이 배가 아프고 구토가 난다. 복부도 빵빵해지고 소화도 안된다. 3~4일 정도 소화제를 먹어도 별로 차도가 없다. 집 앞에 내과를 가본다. 예약을 하지 않았음에도 30분 정도 기다리니 내 순서가 온다. 젊은 의사이나 소화기내과 전문의라고 한다. (왠만한 동내 내과는 거의 대부분 소화기내과 전문의다.) 복부를 들여다보고 청진도 해보고 눌러도 본다. 의사 표정이 아리송하다. 진지한 표정이다. 초음파와 피검사를 해보자고 한다. 예약을 해야하냐고 물어보니 지금 당장 해보자고 한다. (왠만한 동내 내과에는 즉시 검사할 수 있는 초음파 장비가 있다.) 혹시 가격이 비싸냐고 물어보니 보험이 적용되어 3만원대라고 한다. (복부초음파는 보험이 된다.) 초음파실에서 초음파를 들여다보더니 무거운 표정으로 의사가 이야기 한다. "복수도 보이고 난소에 커다란 혹도 보이네요. 아무래도 난소암이 의심됩니다. 의뢰서를 써드릴테니 바로 큰 병원으로 가세요." 의뢰서를 받아들고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의사는 의뢰서를 보더니 산부인과로 연결을 해주었고 2시간 뒤 산부인과 병동으로 입원을 했다.

 

 

인터넷 기사 화면 갈무리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96/0000076344

“배 나오고 입덧, 임신인가 했는데 암?" 33세 女사망, 무슨 일?

https://www.dailymail.co.uk/health/article-13249253/Cancer-stricken-mother-33-thought-pregnant-dies-weeks-doctors-discovered-bloating-vomiting-stage-four-tumour.html

Mother, 33, who thought she was pregnant dies weeks later from can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