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접종하러 오신 어느 환자분.

 

 

수개월 전부터 코로나 백신 접종 환자분들이 많이 오셔서 하루하루 여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엎친데 덥친 격으로 독감백신 접종 시즌이 시작되어 더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몇 일전 기억나는 환자분이 있어서 오랜만에 글을 적어봅니다.

 

당일 잔여 백신을 맞으로 오신 분으로 코로나 백신은 처음 맞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곳 병원에도 처음 오신 분이었습니다.

접종 전 문진을 위해 진료실로 들어오셨습니다.

 

나이는 50대 중반의 건장한 남자분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의 장발이었고, 흰 머리가 들쑥날쑥 검은 머리카락과 뒤섞여 있었습니다.

 

"오늘 컨디션은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약 드시거나, 다른 기저질환은 없으시고요?"

 

"네, 혈압이 높은 편이지만, 약은 안먹고 있습니다. 병도 없구요."

 

이 때 느낌이 싸했습니다.

'혈압은 높은 편인데, 약을 안먹고 있다...?'

'고혈압이 심하지 않아 약은 먹지 않고 생활요법으로 관리중이신가?'

속으로 생각은 했지만, 진료실 밖에서 기계로 혈압을 재서 들어오신 것도 아니어서

수동으로 혈압을 재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럼 혈압을 한번 재보죠. 외투를 좀 벗어주세요."

 

그 환자분은 두툼한 자켓을 벗고 저에게 팔을 내밀었습니다.

커프를 감고, 청진기를 대고 혈압계의 눈금을 보는데

190~200 mmHg 에서 눈금이 왔다갔다 하면서 190 언저리에서 똑똑 소리가 들립니다.

 

"혈압은 190/100 이네요. 너무 높아요. 고혈압 응급상황입니다. 이러다 큰일나겠습니다. 혈압을 낮추는 치료를 우선해야하고, 오늘 백신 접종은 어렵겠습니다."

 

혈압이 너무 높아 심각한 상황임을 알리는 동안,

병합요법으로 처방할만한 혈압약 3가지 정도가 떠올랐고

고혈압 합병증에 대한 기본적인 혈액검사 및 흉부 X-선 검사도 해야하는 상황이어서

제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혈압이 높습니까? 약을 먹어야 한다고요? 제가 아는 병원이 있는데 거기서 약 받겠습니다."

 

이렇게 고혈압 치료와 검사를 모두 거부하고 환자는 진료실 문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과연 그분은 병원으로 갔을까요?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이라도 깨달았을까요?

 

혈압이 190이면 사실 뇌출혈이 생겨 쓰러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입니다.

만약 진료실에서 귀찮아서 혈압을 재보지 않았더라면...

또 고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상태임을 모르고 코로나 예방접종을 했는데,

예방접종 후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혈압이 더 상승하여, 뇌출혈이라도 발생했다면...

 

많은 생각을 하게되는 오후였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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