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어라? 위식도역류가 아니었네?

[투석실 이야기] 어라? 위식도역류가 아니었네?

 

중년 남성분인데 직장에 다니고 계시기 때문에 야간 투석을 오시는 분입니다. 퇴근 후 곧장 투석실로 오셔서 투석치료를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늦은 저녁식사를 한 후 다음날 출근을 위해 금방 잠을 자야하는 스케줄입니다. 늦은 저녁식사로 위에서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상태로 잠을 자야합니다. 그래서 자주 위산역류증상을 호소하시곤 했습니다. 물론 내시경이나 초음파, CT 등의 검사도 정기적으로 시행하였으나 큰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조그만한 담석이 하나 있었을 뿐입니다.

 

어느날 투석실로 연락이 옵니다. 갑자기 윗배가 아프다고 합니다. 응급실까지 갈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닌데 신경이 쓰인다고 합니다. 말기신장병 환자의 경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장기가 심장입니다. 급성 심근경색의 경우 상복부 통증처럼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선 심장에 대한 검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투석하는 날이 아니지만 중간에 오셔서 심전도와 흉부 엑스레이를 촬영합니다. 다행이도 심전도도 정상이고 (급성 심근경색이라면 심전도에 변화가 생깁니다.) 흉부 엑스레이도 이상이 없습니다. 또 그 동안 통증도 저절로 호전되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심근효소(심장 근육이 힘들어할때 상승하는 수치)를 포함하여 피검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평소에 위식도역류병 증상이 자주 있었던 분이라 우선 식도염에 도움을 주는 약을 드렸습니다.

 

다음날 낮에 또 투석실로 연락이 왔습니다. 다시 통증이 생겼고 식도염약을 먹으니 증상이 호전되기는커녕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합니다. 전날 시행했던 혈액검사 결과를 살펴보니 간효소 수치가 증가되어 있습니다.

심근효소수치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뭐지? 식도염약도 효과가 없고 간수치도 올랐네...'

 

우선 다시 내원하여 간초음파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3개월전 초음파 검사 (갑상선, 경동맥, 상복부, 하복부) 를 전부 시행했었지만 갑자기 간수치가 오른 것이 심상치 않습니다. 간과 쓸개가 있는 오른쪽 윗부분 배를 눌렀을때도 아파합니다. 다시 간초음파를 해보기로 합니다.

 

https://www.hopkinsmedicine.org/health/treatment-tests-and-therapies/gallbladder-scan

 

그런데 3개월전과는 간의 모습이 달라져 있습니다. 간에는 혈관(정맥, 동맥) 과 담관이 지나가는데 평소에 담관은 가늘어 초음파로는 잘 보이지않습니다. 이번 검사에서는 간에 담관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즉 담관이 늘어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왜 늘어났나?

간에서 만들어진 담즙은 담관을 통해 흘러서 십이지장으로 들어가 최종적으로 음식물의 소화를 도와야 합니다. 담즙이 흐르는 길목을 누군가 막았기 때문에 담관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럼 누가 막았냐?

흔한 이유로 담석 같은 돌이 막았을 수도 있습니다. 가장 우려되는 원인은 담도암이나 췌장암이 이 관을 막는 것입니다. 초음파로 도대체 뭐가 막고있나 따라가 봅니다. 하지만 그 끝이 잘 보이진 않습니다.

 

우상복부 복통, 발열, 황달

이 세가지는 급성 담관염의 주요 3증상입니다. 급성 담관염은 매우매우 응급한 질환으로 저도 전공의 시절 응급실에서 종종 마주했던 질환입니다. 40대의 건장한 남성도 급성담관염으로 의식을 잃고 축 늘어져 오시기도 합니다. 게다가 치료가 늦으면 목숨까지도 잃는 경우가 생기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급성 담관염은 빠르게 패혈증으로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발열은 없으나 담관이 늘어나있고 복통이 있기때문에 진단과 치료가 늦어질 경우 급성 담관염으로 진행될까 우려되었습니다. 그래서 빠르게 응급실 진료를 권유드렸고 응급실에서 CT까지 촬영하였습니다. 담관을 막고 있었던 것은 돌이었고 다행이 암은 아니었습니다. 돌을 빼낸 후 퇴원하였는데 현재는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고 간수치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위식도 역류질환이 워낙 흔하고 자주 식도염 증상이 있었던 분이라 당연히 식도염의 재발인 줄 미루어 짐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론은 어디까지나 확율일 뿐입니다. 항상 지금이 예외일 수 있다는 겸손한 태도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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