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아이 들쳐업고 응급실간 일

지난 주말 아이 들쳐업고 응급실간 일

 


사건의 시작 

초등학교 1학년된 아들이 있습니다. 어렸을때 모세기관지염을 앓은 적이 있었고 그 때 한번 고생하긴 했으나 이 후로 문제없이 잘 지냈습니다. 몇 일전부터 콧물이 생기더니 간간히 기침도 합니다. 토요일에 소아과를 갔었는데 이미 접수 마감이라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겨우 진료를 받았습니다. 오후가 되어 저는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들을 보니 컨디션이 영 좋지가 않습니다. 청진을 해보니 전체 폐야에 쌕쌕거리는 천식소리가 들립니다. 

'아 큰일이다. 천식인가?'

열은 없으나 호흡하는 모습이 영 좋지가 않아 집에 있던 기관지 확장제 패치를 붙이고 집에 있던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잘라서 먹여봅니다. 저녁이 되자 천식소리는 더 심해졌고 구토와 설사를 했습니다. 기력이 떨어져 축 늘어지고 부호흡근을 사용하여 어렵게 호흡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들쳐업고 냅다 출발 

'안되겠다. 천식 급성악화인가보다. 응급실을 가야겠다.'

축 쳐진 아이를 들쳐업고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이 지역으로 이사온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아 대충 네비게이션을 검색하여 가장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대학병원이 아닌 일반 종합병원 응급실입니다. 접수를 하고 순서를 기다립니다. 응급실 간호사분이 오셔서 산소포화도를 측정합니다. 손가락이 작아 제대로 감지가 잘 안되는지 몇번을 반복하였으나 산소포화도가 모두 90% 아래입니다. (90% 가 안되면 위험합니다.) 굳어진 얼굴로 저에게 이야기 합니다.
 
"소아과 전문의 선생님이 계신 대학병원으로 가야할 것 같아요. 여기는 소아과 선생님이 안계세요."
"아 그런가요? 혹시 어느 병원으로 가면될까요?"
"아마 A대학병원으로 가셔야할 거에요. 그런데 B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응급실진료를 못한다고 해서 OO시내 전체 아이들이 A대학병원으로 몰려갔을거에요. 좀 오래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겠어요."
"알겠습니다. 어쩔수없네요....가봐야지요"

 

 


 
한번 들어보세요.

이 후 보고를 받았는지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직접 오셨습니다. 우선 아이 상태를 살핀뒤 벤토린 네뷸라이저를 우선 해보기로 합니다. (벤토린은 기관지 확장효과가 있는 약입니다. 단시간 작용하는 약이며 부작용으로 심장박동수가 증가할 수 있습니다.)
 
"목이 쉬었네요. 기침소리 이상하지 않았나요?"

"크룹같은 소리는 안났습니다. 아 저도 내과의사입니다."

"그러시군요. 지금 호흡소리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청진기를 건네며) 한번 들어보세요."

"정말이네요. 아마 여기 오면서 일시적으로 좋아진게 아닌가 합니다."

 

 

 

벤토린 네뷸라이저 적용 후 다시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오셔서 청진을 합니다.

 

"어? 소리가 더 않좋아졌네요. (청진기를 건네며) 한번 들어보세요"

"네 그렇네요. 아까 잠깐 좋았었나봅니다. 그냥 스테로이드 주사 써보는게 어떨까요?

사실 그거 생각하고 오긴했습니다."

"그렇죠? 제 아이라도 그냥 스테로이드 썼을 것 같아요. 해봅시다."

 

이렇게 소아과 선생님 없는 소아과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고 벤토린 네뷸라이저를 한번 더 하고 엑스레이도 촬영했습니다.

엑스레이에는 오른쪽 폐에 폐렴도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호흡이 좋아지니 아이 컨디션도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경구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 항생제를 처방받았습니다. 가루도 곱게 갈리지 않은 투박한 모습이지만 꾸밈없는 약 세팅입니다. 딱 필요한 약만 들어있습니다. 응급의학과 선생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만약 소아과 전문의가 없다고 무조건 다른 곳으로 갔어야 했다면... 아마 지금보다 최소 3~4시간은 더 걸렸을 것이고 아이도 저도 무척이나 고달팠을 것입니다. 소아 응급진료가 힘들다더니 피부로 확 와닿았습니다. '늦은 밤이나 주말에는 아프면 안되겠다.' 이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응급실 다녀와서 그날 밤은 무사히 잘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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