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수를 늘리면?

 

요즈음 의대정원 이슈로 여론이 뜨겁습니다.

저는 한낱 힘없는 비인기과 의사로 힘도 없고 정치에도 관심이 없지만,

의사수가 늘어났을 경우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몇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월급쟁이 흙수저 외벌이 내과 의사에 불과합니다. 학교 다닐때 생리학이 너무 재밌었고, 내과학이 재밌어 적성대로 진로를 선택했습니다. 제가 내과를 선택할 때만해도 면접때 내과 레지던트에 떨어질까봐 조마조마했었는데,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방대 내과 정원미달은 기본이고 지원자가 없자 4년제였던 것이 3년제로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내과의사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요새는 사기가 떨어져 그런지 마음이 예전같지 않습니다.

 

의사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문제점 : 필수과 의사가 부족하다. 특히 지방에는 더욱 부족하다.

해결방법 : 의사수를 늘리면 밀리고 밀려서 필수과를 지망할 것이고, 밀리고 밀려서 결국 지방에도 갈 것이다.

즉, 자율경쟁을 시켜 경쟁에서 밀려난 의사는 자연스레 비인기과인 필수과를 선택할 것이고, 수도권에서 밀려 지방으로 갈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기에 관해서 모 유튜브 영상에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 있기에 인용해봅니다. (아래 그림 참조)

피부, 미용과 성형으로 가는 비급여진료과 배관은 문제가 없는데, 외과, 소아과 같은 급여 위주의 비인기과 배관은 막히고 깨져 고장이 났습니다. 물을 부어도 비급여 진료과 배관으로 더욱 많은 물이 흘러가는 상황입니다. 의대정원을 늘리는 것은 물이 없으니 물을 더 붓자는 것입니다. 배관을 고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서 물을 부어봤자 결국 비급여 진료 위주의 과로 더 많은 물이 빠져나갈 것입니다. 물을 붓더라도 문제의 근본원인, 망가진 배관을 먼저 고치고 물을 붓는 게 맞는 순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배관을 고치려면 의료비와 세금이 폭증하니 정치인 입장에서는 손을 댈 생각조차 안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튜버 박본질 영샹 중 (필수의료, 소아과 붕괴의 본질, https://youtu.be/Pmh9z_-Cje8?si=ZFzAaQ5KmD9yrmvM)

 

그래도 물을 부으면 어쨌든 외과, 소아과를 택할 의사는 늘어날 것이고, 지방으로도 가지 않겠느냐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의사 수가 늘어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다른 문제는 없을까요?

 

필수 의료는 자율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의료가 경쟁의 대상이 아닌 이유는, 재화의 가격을 주인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격은 국가가 결정합니다. 이미 의료수가는 원가도 안되는 수준입니다. 대학병원의 주된 수입은 의료행위가 아닙니다. 장례식장, 1인실 입원실 비용, 식당 및 매점 임대료 등으로 적자를 만회합니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 회의시간에 행정 직원이 모 진료과 교수님에게 수술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한 적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수술을 하면 할 수록 병원 입장에서는 손해가 나기 때문입니다. (허탈해 하시던 그 교수님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따라서 보험진료 위주인 필수과 입장에서는 단순히 보험진료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보험진료를 하더라도 박리다매 전략을 쓰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특수 검사나 시술, 수술을 자주 하거나, 비급여 처방을 병행해서 해야합니다. 이런 선택이 안되는 (특수 검사나 시술, 비급여 처방 등을 많이 할 수 없는) 소아청소년과가 결국 무너져 버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자꾸 피를 뽑고, 자주 영양 수액을 놔주고 이럴 순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의대 정원을 늘려봤자 비급여 진료나 처방이 많은 피부/미용 쪽으로 더욱 몰리게 될 것입니다. 

 

의사는 의료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만일 의사 수가 많이 늘어나 피부미용, 성형 등 비급여 진료과 경쟁에서 밀린 의사들이 비인기 필수과를 선택한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필수과 의원과 의사가 생존하려면 경쟁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그 경쟁은 가격을 낮추는 경쟁이 아닙니다. 주인장 마음대로 가격을 결정할 수조차 없으며, 이미 정해진 가격 역시 매우 낮아진 가격입니다. 방법은 한 가지 입니다. 내가 생존하기 위해 수요를 자꾸 만들어내야 합니다. 수요를 창출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자꾸만 이것저것 검사를 하고 시술을 자꾸 하고 자꾸만 병원에 오게끔 유도해야 합니다. 별 시덥지 않은 작은 병이라도 찾아내기 위한 여러가지 검사를 하고 'OO병'이라고 그럴듯한 진단을 붙이고 안써도 될 약을 굳이 처방하는 것입니다. 또는 당장 안해도 될 시술이나 수술을 지금 하도록 종용할 수도 있습니다. 자꾸 뭔가를 해야 병원에 수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필수 의사가 늘어나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 될 것입니다. 가벼운 증상인데도 자꾸 검사를 권할 것이고 자꾸 약을 주고 병원에 오라고 할 것입니다. 1달씩 약을 줘도 되는데 1주일씩만 처방할 수도 있습니다. 자꾸만 병원을 오라고 합니다. 내원하는 병원마다 자꾸 달라붙어 이것저것 검사와 시술을 해야한다고 설득할 것입니다.

 

의학은 지식의 비대칭성이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이 검사가 꼭 필요한 검사인지, 이 약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구별해낼 힘이 없습니다. 환자에게는 전문 의학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튜브나 인터넷의 발달로 증상과 질병에 대해 검색을 하고 공부를 하여 내원하시는 환자분들도 참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얻은 지식은 단편적이고 부정확하여 크게 도움이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만의 고집으로 굳어져 의사의 진료 방향을 따르지 않는 환자분들도 계십니다. 어떤 경우에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오셔서 걱정이 된다며 이것저것 정말 불필요한 검사를 원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2가지 문제가 발생할 것입니다.

첫째, 의사가 늘어난 만큼 의료비가 큰 폭으로 증가할 것입니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에 많은 부담을 줄 것입니다. 그러면 국가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본인부담금을 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 특성상 큰폭으로 올리지 못합니다. 결국 건강보험급여 비용을 제한 할 것이고 이는 의료의 질 저하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충수염 수술은 포괄수가제로 묶여있습니다. 이 질병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액의 한도를 정해놓은 것입니다. 따라서 충수염으로 입원했을 때 평소 어깨 통증이 있어 정형외과 협진을 받고 싶더라도 불가능합니다. 수술 후 몸이 힘들어 입원을 더 연장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금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포괄수가제나 총액제한방식으로 의료비용을 국가에서 통제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최악의 경우, 의료비 증가폭이 너무 심해 도저히 안된다면, 국가도 해결불가능한 상황에 놓입니다. 남은 방법은 의료 민영화 뿐입니다. 그러면 미국처럼 충수염으로 입원하면 수천만원 병원비가 청구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지금도 '감기에 걸릴 것 같아서 미리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타이레놀 정도로도 좋아질만한 경미한 증상인데도 불구하고 병원약을 먹어야 낫는다며 오십니다. 감기라고 해서 예방약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증상에 맞춰서 약을 처방하는 대증요법이 주된 치료입니다. 만일 본인부담금이 늘어나고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면 이런 이유로 내원하시는 환자분들이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둘째, 의사의 말을 신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병원 갈때마다 이것저것 검사를 하라고 하고 약을 주니 의심부터 하게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단순한 혈압약이나 고지혈증약을 처방해드리려고 하면, 본인이 알아서 하겠다며 거부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최근에 90세 할머니인데 코로나에 걸리셨습니다. 전신적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아 혹시 폐렴이 있는지 확인하자고 엑스레이를 권유드렸으나 아들이 거부하였던 일도 생각납니다. 굳이 엑스레이를 왜 찍어야 하냐며...

 

이런 의료 불신의 시대가 왔을 때 더욱 건강문해력 또는 의학문해력 (health literacy) 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떤 의사가 신뢰할만하고, 어떤 의사가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를 자꾸 유도하는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문적인 의학내용을 모두 완벽히 알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중요한 의학 지식들을 갖추고 있어 본인에게 필요한 신뢰할만한 의사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 블로그에 '의학문해력 (health literacy)'을 갖출 수 있는 쉽고 정확한 내용의 글들을 앞으로 적어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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