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80대 노부부 이야기

 

 

[투석실 이야기] 80대 노부부 이야기

 

 

 

매번 투석실 오시면 늘 한숨섞인 불평과 하소연을

늘어놓으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그 이유는 집에서 누워지내시는 남편 때문입니다.

할머니의 남편분은 오래전부터 집에서 누워서 지내시고 계셨습니다.

어떤 병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서

임종하실 날을 집에서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병수발을 할머니가 다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투석실에 오시면

어깨, 무릎, 허리 등등 여러군데 관절과 근육통을 호소하면서

식사도 잘 못챙겨드시고 힘이 든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 말을 습관처럼 하십니다.

 

"그 노인네 빨리 죽지도 않아, 내가 너무 힘들어..."

 

몇 달전 할아버지 상태가 안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의식이 잠깐 흐려졌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적잖이 할머니께서도 놀란듯 보였습니다.

 

옛날에는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시는 노인 분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임종을 지켜보겠다며 호언장담하고 퇴원하였던 환자의 가족분들도

환자분의 상태가 않좋아지면 어김없이

놀란 모습으로 응급실로 다시 오시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놀라실까봐

임종을 앞 둔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몇 가지 증상을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아무리 명의라고 해도 임종의 시각을 정확히 맞추기는 불가능합니다.)

 

첫번째는 숨이차고 숨을 쉬기 어려워할때.

두번째는 소변이 전혀 안나올때.

세번째는 의식이 없어질때.

이런 증상일 때 임종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병원 응급실로 출발하시라고 설명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드린지도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몇 일전 할머니께서 투석받으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몸을 오들오들 떨고 계셨습니다.

목소리도 쉰목소리였고 표정도 울상이었습니다.

 

"할머니 어디 불편하세요?"

 

"갔어. 할아버지가 어제 갑자기 떠났어. 아주 어이가 없고 기가차"

 

할아버지께서 간밤에 갑자기 임종하셨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이 곡소리를 내셨는지, 목이 다 쉬었습니다.

임종에 이르기 전 나타날 수 있는 증상들을 설명해드렸지만,

그런 증상이 전혀 없이 주무시다가 편안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주 어이가 없고 기가차"

"아주 어이가 없고 기가차"

"아주 어이가 없고 기가차"

 

이 말씀만 되풀이 하셨습니다.

일전에 왜 나를 힘들게 하냐고 원망섞인 불평을 자주 하시던 분이라

'편안히 잘 돌아가셨어. 이제 속이다 시원해...'

이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은 전혀 하지 않으시네요.

아마도 할머니의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이 후 장례식이 다 끝나고 정리가 되고 난 뒤에는

 

"집이 조용하고 쓸쓸해, 잘 살아봐야지 뭐"

 

라며, 할아버지의 부재를 아쉬워하셨고 그리워하셨습니다.

병환으로 누워계시는 할아버지라도

그 존재만으로도 할머니께는 삶의 큰 의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늙어서 우리 부부는 어떤 모습일까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남아있을까...

여러가지를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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