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이 의대에서 1등할 수 있었던 공부하는법 공부방법 (1)
- 03_프로젝트/의대생 그리고 수련의
- 2020. 3. 27.
저는 중학교때는 공부를 좀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비교적 우등생의 모습을 한 학생이었습니다. 비교적 문제없이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하였고, 성적도 꽤나 잘 나왔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졸업 후 지방의 한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는데, 그때 배치고사에서 남자 중 10등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배치고사까지는 잘 봤지만, 고등학교로 올라오면서 갑자기 어려워진 수업 내용과 학습양을 따라가지 못해 첫 시험에서 수학을 70점을 맞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너무 놀라서 반년간 수학 과외도 받아보고, 나름 노력도 하여 성적이 오르긴 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때는 성적이 조금더 올라서 반에서 만년 3등을 했습니다. 딱 한번 체육과목까지 영혼까지 점수를 끌어모아 평균을 내어보니 0.2점 차이로 반에서 1등을 했던 적이 기억납니다. 하지만 우리 반의 실력이 좋지 못했는지, 반에서 겨우 1등을 하였더라도 전교 석차는 10등쯤 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반에서 1등한 친구는 의대를 갔고, 배치고사 기준 남자 9등 (처음 임시소집일날 제 옆에 앉았던 친구) 도 의대를 갔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대학은 내신 30~40%, 수능 60~70% 정도의 비율을 정시모집에 반영하였습니다. 저는 의대에 갈 생각은 전혀 없었고, (갈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했었습니다.) SKY 중 한 곳의 생명과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고등학교 내신 성적은 그럭저럭 괜찮아서 수능만 잘 나와준다면, 모의고사에서 받았던 최대 점수와 똑같이만 나와준다면 승산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수능에서 너무 긴장하였는지 맨 처음 과목인 언어영역에서 많은 실수를 하였고, 모의고사 성적보다도 더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저도 너무 실망하였지만, 친구들도 놀라고, 담임선생님도 놀라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재수는 절대 하기싫고 무조건 서울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서울 SKY 는 아닌 한 대학교 생물학과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것도 추가 모집 2차로 겨우 합격이 된 것은 비밀아닌 비밀입니다. 막상 대학생이 되니 자유로운 해방감에 방탕한 생활을 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학과 공부는 하지 않았고, 성적은 매우 좋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스펙에 목숨거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고, 수업 끝나면 선배들과 친구들과 술먹고 놀고 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돈을 버는 것도 없으면서 돈을 왕창 썼고, 연애하면서는 소비가 더욱 늘어 용돈이 필요하다고 부모님께 전화하기 일쑤였습니다.
고등학생때는 학교 선생님이나 친구들, 학원에서 다 알아서 알려주니, 시키는대로 하면 되었지만, 대학교는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학교의 개별 단위는 나 한사람, 개인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동기중에 사려깊은 친구는 이미 복수전공이라던가, 부전공, 교환학생, 교생실습 등을 신청하여 다양한 기회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생활 2년을 끝내고 저는 군대를 갔습니다. 군입대 또한 미리 준비를 했다면 운전병, 화학병 등 특수보직으로 지원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아무런 생각도, 준비도 없이 육군 보병으로 군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운전병이 부족했던 시기였는데, 만일 미리 운전면허를 따 두었다면 훈련소에서 운전병으로 바로 뽑혔을 것인데, 저는 운전면허도 없었습니다. 군대는 자유는 없지만, 대신 다양한 부대원과 오랜시간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위병소, 무기고 보초 근무를 서는 날이면, 선임 사수와 단둘이 2시간 동안 옆에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갈굼을 받고 힘든, 두려운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 때 주로 하던 대화는,
"사회에서 뭐 했냐?"
"뭐 전공했냐?"
"연애해봤냐?"
"여자친구 이쁘냐?"
이런 이야기가 주된 대화 주제가 됩니다. 저는 연애는 하고 있어서 여자친구 이야기는 할 수 있었지만, 전공과목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어서 전공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보통 생명과학과라고 하면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이상 더 들려줄 이야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자괴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학교 2년을 공부했는데, 아는 것이 이렇게 없다니! 그 동안 난 뭘 한걸까!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어떤 선임은 본인의 관심사가 커피, 스쿠버 다이빙인데, 거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재밌게 술술 풀어내는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선임은 유흥업 쪽에서 일하는 사람이었고, 화려한 사회생활의 단편들을 풀어내어 마치 영화를 보듯 흥미롭게 들었던 (간접체험) 기억도 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이색적인 경력이나 경험도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라고 자각한 저는 군대에서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뭔가 저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자 급수 2급 자격증이나, 워드프로세스 1급, 컴퓨터 활용능력 2급 등 뭐든 도움이 될만한 자격증을 공부하여 획득하였습니다. 또 책을 너무 읽고 싶었는데, 제가 있던 군대에서는 상병이 되면 책을 볼 수 있게 용인해 주었기 때문에 일병때는 다들 자는 시간에 몰래 화장실에서 책을 읽곤 하였습니다. 상병이 되면서 군생활이 조금더 편해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말에 보통 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기 일쑤인데, 그 때도 책을 계속 읽었습니다. 그 당시 제 목표는 책 100권을 남은 군생활동안 다 읽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싸지방 (싸이버 지식 정보방인가? 컴퓨터실) 같은 시설은 없었으며, 그나마 부대에 있는 문화시설이라곤 교회 그리고 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은 쉽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군 전역하기 전까지 책 100권 이상 읽는 것은 성공하였습니다.
군대를 전역한 후 대학교에 다시 복학하기까지 몇 달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우선 그 시기에 운전면허증을 땄었고, 무언가 제게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아야 했습니다. 제 전공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다는 것이 너무 창피하였기 때문에, 생물학에 제일 기본이되는 분야는 제 생각에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 입니다. 그래서 세포생물학과 분자생물학책을 들고 무작정 집 근처 공공도서관으로 찾아갔습니다. 그 후로 복학 전까지 매일 열람실로 출근하면서 공부하였습니다. 그 때 여러가지 공부 방법을 시도해보면서 저에게 가장 맞는 공부 방법을 찾아 조금씩 적응해 나갔습니다.
이 후 학교로 복학한 저는 전형적인 복학생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무조건 수업시간보다 10분 일찍 강의실에 와서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래서 빔 프로젝트 설치 등의 봉사(?) 를 제가 도맡아서 했던 기억이 납니다. 덕분에 교수님과도 좀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가서 수업내용을 복습하였고 정리하였습니다. 이전에는 혼자 밥먹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그 때는 혼자 밥먹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 동료들하고 밥을 먹긴 했지만 식사도 하고 커피도 같이 마셔야하고 이야기도 해야하고, 물론 재밌긴 했지만, 시간을 많이 쓰게되니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공부한 내용을 정리해야 했으니까요.)
이런 생활을 하니 성적에도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모든 과목에서 시험 성적이 B+ 이상은 나온 것입니다. (A+ 도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4학년때는 all A+ 도 맞았으며, 마지막 학기에서는 안타깝게도 한 과목만 A 이고 나머지는 모두 A+ 이 나왔습니다. 성적이 오르자 뜻하지 않게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예와 관련된 교양과목을 들었는데, 큰 강당에 다양한 학과의 백여명의 학생들이 같이 수업을 들었습니다. 원예 수업도 저는 똑같은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같이 들었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과외를 뛰느라 공부를 못해 제가 정리한 자료를 복사해 주고 챙겨주었습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전체 학생들의 시험점수를 강당 앞 게시판에 게시해 놔서 전체 학생들이 확인을 할 때였습니다. (이름은 없이 학번과 점수만 게시) 그 친구는 90점이 나왔다고 뛸듯이 기뻐하며 좋아했습니다. 저는 그 과목에서 95점을 받았고, 다른 학생들의 점수를 보았는데 95점이 최고점수였고, 95점도 저 밖에는 없었습니다. (너무 자랑같지만) '나도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 는 생각이 할 수 있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성적이 오르고, 장학금도 받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작은 성공이 누적되자, 이제는 뭘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환자중에 군대 신검 중 뇨이상으로 내원하는 젊은 환자 분들이 있습니다. 대부분 정확히 진단을 통해 위험한 병이면 군대에 안가려고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드물게 해병대에 지원을 했는데, 꼭 가고 싶으며 다시 검사를 받으러 온 분도 있습니다. 저는 군의관이 아닌 일반 사병으로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는 같이 오신 부모님들께 군대를 갈 때 마음먹기에 따라서 인생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 해드립니다. 군대에서 그 소중한 시간을 본인의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너무 빨리 군대를 온 친구들은 자기계발의 기회를 찾기보다는 아무런 노력없이 낮잠이나 TV 로 전역날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라고 격려하곤 합니다.
간단히 공부방법을 적으려 했는데 서론을 적다보니 과거 추억에 젖어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음에 이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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