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딸꾹질' 하면 기억나는 분
- 00_투석실 이야기
- 2023. 4. 3.
[투석실 이야기] '딸꾹질' 하면 기억나는 분
최근 저희 투석실에 딸꾹질이 지속되었던 분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딸꾹질'하면 떠오르는 분이 있어 그 분에 대한 일화를 적어봅니다. 예전 대학병원에서 근무할때의 일입니다. 80대 남성 분으로 고혈압성 만성 콩팥병이 악화되어 투석을 앞두고 계신 상태로 외래로 내원하였습니다. 가져오신 검사를 보니 역시 투석을 바로 하셔야 할 정도로 신기능이 좋지 않아 바로 입원장을 드렸습니다. 입원해서 늘 하던데로 투석을 시작하였습니다.
투석을 시작하면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검사를 권유드리곤 합니다. 바로 조영제를 사용하는 CT 검사입니다. 만성콩팥병 환자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암 발생확률이 높은데 CT 검사는 암 검사에 필수적인 검사입니다. 특히 조영제를 투여해야 혈관이 풍부한 암 덩어리를 손쉽게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동안은 콩팥이 좋지 않아 조영제 CT를 촬영할 엄두도 못냈던 것입니다. 이제 투석을 시작하고 조영제 독성을 해결할 방법이 마련되었으니 CT 촬영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으레 하던 것처럼 CT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복부 CT 에서 간에 혹이 나왔습니다. 간암입니다.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암의 위험 요인이 뚜렷하지 않은데 간암이 확인되어 놀랐습니다. 다행히도 크기가 작았고 다른 곳에 전이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초기 간암을 빨리 발견한 것이고, 투석의 시작이 곧 전화위복이었습니다. (참고 : 간암은 조직검사 없이 CT 나 MRI 로 진단이 가능합니다. 이분도 CT에 이어 MRI 까지 촬영하였습니다.)
초기 간암의 경우 완치목적으로 간 고주파 열치료(RFA)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긴 바늘을 간의 암세포 덩이에 꽂아넣고 고주파 전류를 흘려보내 태우는 치료입니다. 수술과 마찬가지로 완치 목적의 치료이며, 암 갯수가 여러개이거나, 암덩이가 크면 시행할 수 없습니다. 이 환자분도 이 치료를 시행하였고 큰 합병증 없이 끝났습니다.
몇 일 뒤 응급실 담당 전공의로부터 노티(noti)를 받습니다. 그 환자분이 의식이 없어 응급실로 왔다고 합니다.
'읭? 투석도 잘 시작했고, 간암치료도 큰 문제없이 끝났는데... 왜 의식이 없어?'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응급실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정말 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의식이 없는 것 치고는 혈압이나 맥박수, 산소포화도 등 가장 중요한 활력징후 지표가 모두 정상입니다. 게다가 중환자 특유의 축 늘어진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마치 곤히 자고있는 사람처럼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깨우면 금방이라도 눈을 뜰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가끔 옹알이 같은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 않습니다. 통증 자극에만 약간 움직일 뿐입니다.
신경과 협진도 요청하고 머리 사진도 촬영했으나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진료 기록을 자세히 보니 2일전에 응급실에 한번 오신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딸꾹질이 멈추지 않아서 내원한 것으로 적혀있었습니다. 딸꾹질의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아마 간암 치료로 고주파 열치료를 한 후 생긴 딸꾹질인 것 같습니다. 아마 횡경막이 자극을 받아 발생했을 것이고 수일뒤 저절로 좋아집니다. 보통 딸꾹질이 오랜시간 지속될 경우 위장운동 촉진제를 먼저 사용해보는데 효과가 없으면 보통 '바클로펜' 이라는 중추성 근이완제를 사용하곤 합니다. (효과가 좋습니다.)
역시 2일전에도 바클로펜이라는 약제를 사용했습니다. 용량 자체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량을 사용하였습니다. 아마도 이 약제 때문일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바클로펜은 투석환자에게 사용했을때 뇌병증을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게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2020년도에 kidney international 에도 논문이 실렸네요, (아래 그림참조) 투석환자에서 (특히 고령) 바클로펜은 뇌병증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있으니 사용하지말자. 라는 결론입니다.)
약제 해독을 위해 매일 투석을 진행했습니다. 투석으로 걸러내고, 다음날에도 걸러내고...그 다음날도 걸러내고...
투석을 하면할수록 점차 환자분의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점점 깨어나는 것이 느껴집니다. 4일 정도 투석을 진행했을때 거의 완전히 의식이 되돌아왔으며 다른 특별한 후유증 없이 잘 퇴원하였습니다. (이럴때 '투석'치료의 강력한 힘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00_투석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석실 이야기] 투석실은 당뇨발과 전쟁 중 (0) | 2023.04.12 |
---|---|
[투석실 이야기] 척추관 협착증으로 허리에 주사를 맞고 오신 분 (0) | 2023.04.05 |
[투석실 이야기] 손이 저려요(2) : 자신경굴 증후군(ulnar entrapment syndrome), 팔꿉굴증후군 (주관증후군, cubital tunnel syndrome) (0) | 2023.03.30 |
[투석실 이야기] 손이 저려요 : 투석관련 아밀로이드증, 손목터널 증후군 (0) | 2023.03.27 |
[투석실 이야기] 목에 혹이 있다고요? (0) | 2023.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