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살이 찌면 건체중도 올려야 한다?
건체중과 관련하여 알아두면 좋은 개념
"살이 찌면 건체중도 올려야 한다?"
투석에 익숙하신 분이나 투석을 받으신지 오래 되신 분에게는 익숙한 개념일 수 있으나, 투석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이라면 이런 체중 개념이 생소할 수 있습니다. 건체중의 정의는 여분의 수분이 없는 정상체중을 의미합니다. 투석후 저혈압이나 혈액량 감소 증상이 없는, 견딜 수 있는 가장 최저의 체중 입니다. 투석 후 건체중에 잘 맞추면 몸이 가벼워지고 숨도 안차며 컨디션이 좋습니다. 반면 건체중보다 체중이 남을 경우 몸이 무겁고 부종이 생기거나 숨이 찰 수도 있습니다. (누웠을때만 유독 기침이 나는 것도 폐에 수분이 많을 때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건체중보다 체중 더 가볍게 만들었을 경우에는 부종도 없고 숨은 안차지만, 투석 후 혈압이 떨어지고 어지럽거나 매우 힘이듭니다. (귀가 멍멍해진다는 분도 있고 목이 건조해서 목소리가 잠긴다는 분도 계십니다.)
한번 정해진 건체중은 영원할까요? 아닙니다. 평생 체중이 한결같이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기계가 아닌 이상, 체중은 변할 수 있습니다. 저도 매일 아침마다 같은 시각에 체중을 재보는데, 500g 정도는 우습게 차이가 납니다. 때로는 수주일에 걸쳐 체중이 2kg 이상 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요새 내가 야식을 많이 먹었지...', '요새 내가 운동을 전혀 안했지...' 살찐 이유에 셀프수긍을 하고 자책하곤 합니다. 그리고 야식을 끊고 운동을 하여 다시 체중을 빼려고 노력합니다.
투석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체중이라는 숫자에 맞추기 때문에 겉으로 티가 나지 않을 뿐 몸 안에서는 살이 쪘다 빠지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투석실에서 쉽게 접하는 대표적인 체중변화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큰 수술 후 살이 빠지는 과정
60대 남성분입니다. 타병원에서 2개월 정도 수술 및 재활치료 후 퇴원하였습니다. 퇴원 후 내원 첫 날, 요새 자꾸 숨이 차다고 하여 투석이 끝난 후 엑스레이를 촬영하였습니다. 설정된 건체중은 입원 전과 동일한 상태였습니다.
3개월 전 엑스레이에 비해 심장크기가 크게 증가되어 있고 폐 부종이 심하며 우측 폐에 물이 고여 있습니다. 2개월 입원하는 동안 식사량도 줄었고 병원 치료식으로 양이 정해져서 나와 많이 드시지도 못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재활치료도 열심히 받느라 실제 체중은 크게 줄어든 것입니다. 실제 체중이 빠진 만큼 투석으로 더 빼주어야 하는데 (건체중을 더 감량하여 설정) 빼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체중만큼 물이되어 체내에 남은 것입니다. 남아도는 수분은 심장에 쌓이고 폐에 고여 숨이 차고 답답함을 느끼도록 만듭니다.
흉부 X-ray 를 확인 한 후 수차례 추가 투석을 시행하고 오실때마다 조금씩 수분을 더 빼는 방식으로 건체중 목표를 내렸습니다. 거의 기존 건체중에서 5kg 이상 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흉부 X-ray 를 확인하였더니 이전 심장과 폐의 모습이 나옵니다. 당연히 숨이 차는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얼굴도 홀쭉해졌고 부종도 없습니다. 그것이 실제 모습이고 실제 체중인 것입니다.
# 회복하여 다시 살이 찌는 과정
홀쭉하고 날씬한 모습을 몇 달 유지하셨지만,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전의 식습관과 생활습관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식사량이 늘었고 재활치료할 때보다 운동량은 줄었습니다. 체중이 많이 늘어오는 날이 잦았습니다. 투석간 체중 증가량이 많으니 4시간 투석시간동안 체중을 다 빼지 못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동시에 혈압약을 줄였음에도 계속 혈압이 낮아져 체중을 자꾸 올리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다시 5kg 가까이 건체중을 올렸습니다. 5kg 살이 찐 것입니다. 그런데, 건체중이 5kg 이상 달라졌지만, 흉부 X-ray는 변화가 없습니다. 호흡곤란이나 부종 증상도 없습니다. 체중이 늘어난 것은 물이 쌓여 부은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의 진짜 살이 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환자 분들께 이러한 현상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아래 화학반응식의 개념 (세포호흡과 관련된 반응식) 을 이용합니다. 이 화학반응식은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얻는 반응입니다. 포도당(유기물 : 탄소, 수소, 산소로 구성) 을 사용하여 에너지 (ATP) 를 뽑아내고 결국 물과 이산화탄소가 남는 반응식입니다. 우리가 호흡할때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산화탄소는 기체니까 호흡으로 날아가지만, 물은 소변으로 나가야 합니다.
"어머님, 요새 식이조절도 잘하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죠? 그래서 살이 빠졌나봐요. 지난번 촬영하신 엑스레이에서 심장이 전보다 커졌고 폐도 부어있네요. 살이 빠진 만큼 체중을 더 빼서 물을 걷어내야겠어요."
"나 물 많이 안마셨는데...?"
"물 많이 마셔서 쌓인 것이 아니구요. 어머님 살이 빠져서 그게 물이 되서 남았나봐요. 원래는 소변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소변을 잘 못보시니 그게 심장하고 폐에 고여있는 것이이에요. 투석으로 빼내면 되요."
투석을 받는 환자분들을 자세히 관찰을 하면 X-ray 를 보지않고도 이러한 변화를 미리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컨디션도 좋고 식욕이 좋아 체중을 평소보다 많이 늘어오시기를 반복하셨다면, 어느 순간부터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는 혈압이 130~140대였는데 110~120대로 감소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부종 같은 수분이 많다는 증거가 없다면 '살이 찌셨나보다. 조만간 체중을 올려야 하겠구나'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후에 체중을 많이 빼지 않았음에도 투석 후반 혈압이 100 초반 혹은 그 이하로 감소하거나 저혈압의 증상이 나타나면 체중을 올려드립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심한 폐렴이나 감기몸살, 장염 등으로 식사를 거의 못하는 상황이 되면, 투석간 체중 증가량이 매우 적습니다. 거의 체중이 늘어오시지 않습니다. 빠르게 식욕과 컨디션을 회복한다면 체중 변화는 거의 없겠지만, 식사량 감소가 지속되면 점점 혈압이 오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때부터 실제 체중이 빠졌다고 판단하고 조금씩 건체중을 낮춥니다. (체중이 많이 늘어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건체중 낮추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정강이 앞부분이나 발등이 붓기 시작한다면 좀 더 과감히 건체중을 감량합니다.
체중 변화가 적은 분 (서서히 찌고 서서히 빠지는 분) 은 이러한 특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나중에 정기적으로 3개월마다 촬영하는 엑스레이를 확인하고 건체중을 다시 설정하기도 합니다.
아직까지 체내 수분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기계나 방법은 없습니다. 그 어떤 도구나 검사보다도 환자분들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직접 (혈압이나 전신 모습을) 관찰하고 (부종이 있는지) 만져보고 (컨디션은 좋은지, 식사량은 적당한지 물어보고) 들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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