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자주 만나는 것이 최고
- 00_투석실 이야기
- 2023. 5. 1.
[투석실 이야기] 자주 만나는 것이 최고
투석실에 젊은 환자분이 계십니다. 1형 당뇨라서 인슐린을 사용합니다. 1형 당뇨는 췌장에서 인슐린 자체가 분비되지 않아 당뇨가 생기는 형태입니다. 보통 어릴때 진단이 되므로 소아당뇨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나이 들어 진단되는 2형 당뇨는, 인슐린 자체는 분비되나 인슐린이 잘 듣지않아 발생하는 당뇨입니다.)
투석치료는 이곳에서 받으시지만, 당뇨에 대해서는 모 대학병원 내분비내과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병원이다보니 외래 진료를 자주 가지는 못하고 보통 3개월마다 진료를 받고 인슐린과 당뇨약을 타오십니다. 약을 잘 정해주셔서 그런지, 1형 당뇨임에도 비교적 당조절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부터 당조절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투석을 시작할 때 바늘을 찌른 후 나온 혈액을 통해 혈당을 매번 체크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혈당이 계속 250~300 으로 나옵니다.
"요새 혈당이 높아진 것 같아요. 인슐린은 잘 맞고 계시죠?"
"저혈당이 와서 급하게 오렌지 주스와 사탕을 먹고 왔어요."
1형 당뇨는 인슐린 1단위에도 혈당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대학병원 내분비내과를 다니고 계시고 마침 진료 날짜도 몇 일 남지 않아서 저혈당을 조심하라는 말씀만 드리고 경과를 보기로 했습니다.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진료를 다녀 오셨는데 약은 똑같았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도 없었다고 합니다.
"여기 투석실에서 혈당 체크를 매번 하니까 이제 내분비내과는 안갈래요.
거리도 너무 멀고 시간내기도 어려워요. 혹시 여기서 당뇨약을 처방해주시면 안되나요?"
당뇨약을 여기서 받겠다는 의미는, 당조절을 이 곳에서 도맡아서 해달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3번은 무조건 만나는 상황이고 자주 검사도 할 수 있으니, 혈당 조절에는 더 유리할 것 같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여기서 혈당조절을 해보죠.
여기서 해보다가 혈당조절이 잘 안되면 그 때 다시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진료 보시도록 할께요."
우선 왜 저혈당이 자꾸 반복되는지 원인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저혈당이 생기니 자꾸 당을 올리려 주스나 사탕을 드시기 때문입니다.
날을 잡아 진료실에서 20분 이상 대화를 나누면서 원인을 찾아봅니다. 최근에 직장을 옮기면서 근무형태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야간에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잠을자고 일어나 오후 3시쯤 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저녁에 출근하여 새벽 1시경 식사를 하신다고 합니다. 오후 3시에 드시는 식사가 곧 아침식사요, 새벽 1시 식사가 곧 점심 겸 저녁식사가 되는 것입니다.
또 이 분이 쓰고 있는 인슐린 종류에 대해 분석을 해봅니다. 이 분은 휴마로그믹스25 를 쓰고 있습니다. 휴마로그는 빠르게 작용하고 빠르게 그 효과가 사라지는 초속효성 인슐린 종류입니다. 휴마로그에 특수한 변화를 주면 (protamine 을 붙여) 작용시간이 약간 더 길게 만들 수 있습니다. (중간형 인슐린 같은 효과) 휴마로그믹스는 이 두 가지를 섞어서 만든 인슐린펜 종류입니다. 초속효성 인슐린과 중간형 인슐린을 섞어놨기 때문에 하루에 맞는 인슐린 횟수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비교적 강력한 혈당 강하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25라는 숫자는 초속효성 인슐린의 비율을 뜻합니다. 100단위를 주사하면 이 중 25단위 (25% )는 초속효성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이 분의 생활 방식상 하루 2끼만 드시고 계시고, 식사와 식사 사이에 간격이 매우 긴 편입니다. 그런데 휴마로그믹스를 사용하다보 식사 사이 혈당이 높지 않을 구간에서 중간형 인슐린의 효과가 남아있어 저혈당을 유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아래 그림 참조)
따라서 이 환자분의 생활 방식에 맞게 인슐린 종류를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중간형 인슐린 특성이 나타나지 않도록 리조덱이라는 또다른 믹스펜을 사용해보기로 합니다. 이 인슐린은 아스파트라는 초속효성 인슐린과 데글루덱이라는 천천히 길게 작용하는 지속형 인슐린이 합쳐진 인슐린입니다. 휴마로그믹스25 와 다르게 리조덱은 초속효성 인슐린 비중이 30%로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리조덱으로 변경한 후 현재까지 저혈당 이벤트는 없는 상태입니다. 저혈당이 없으니 불필요하게 당 섭취를 많이 하지 않아도 되어 투석 시작시 측정한 혈당도 110대로 안정적입니다. 환자를 자주 만나고 환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디테일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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