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이제 투석을 해야한다고요?

 

이제 투석을 해야한다고요?

 

 

혈압으로 정기적으로 외래에 오시는 할머니가 계십니다.

나이도 80대 후반, 고령이시고 3년전쯤에 콩팥 기능이 나빠져

다른 곳에서 진료받으시다가 오신 분입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약을 잘 챙겨드신다고 해도 세월의 위력은 막을 수 없습니다.

콩팥 기능이 유지되는 듯 하더니, 올해부터는 콩팥 기능이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슬쩍 운을 뗐습니다.

 

"어머니 이제 슬슬 투석을 준비해야할 것 같아요."

 

90세가 다되가시는 고령이지만, 혼자서 병원도 잘 다니시고,

집에서 밥도 잘 해서 드실 만큼 정정하신 상태라 혈액투석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완강히 거절하십니다.

 

"우리 남편이 투석하다가 저세상에 갔어. 나는 절대로 안할거야. 옆에서 고생하는 걸 다 봤어!"

 

"요새는 그렇게 힘들게 투석안해요. 제가 힘들지 않게 잘 해드릴게요."

 

그렇게 진료때마다 실갱이가 벌어집니다.

제 계획은 미리 투석을 할 수 있는 혈관을 팔에 만들어 놓고

적절한 시기가 되면 투석을 시작하는데, 처음에는 주 2회로 시작해볼 계획이었습니다.

(원래 혈액투석은 주 3회, 4시간씩 투석하는 것이 정석입니다.)

 

혈관을 미리 만들어놓으면 많은 이점이 있지만

고령이라 무작정 수술을 강행하는 것도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현재까지 할머니는 투석치료 시작을 안했지만,

다행이 요독증도 없고, 부종도 없이 잘 지내고 계십니다.

콩팥 기능이 나빠지면 빈혈도 생기는데,

현재까지 주사치료밖에는 없어

어쩔수 없어 2주에 한번꼴로 병원에 오셔서 조혈주사를 맞고 계십니다.

 

만약 앞으로 할머니께 요독증상이 생겨 힘들어하시면,

혹은 부종으로 호흡곤란이 생긴다면,

치료방법은 투석밖에 없습니다.

목 아랫쪽에 굵은 카테터를 설치하고, 투석을 시작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자녀분들 연락처를 알아내서

연락을 했습니다.

 

"이런 이런 증상이 생기면 그때는 빨리 투석을 해야하는 상황이니, 병원에 꼭 오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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