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실 이야기] 지역사회 투석실에서 생각해야 할 점

지역사회 투석실에서 생각해야 할 점

 

 

제가 있는 투석실은 정기적으로 투석하시는 분들만 200명이 넘는 규모가 큰 투석실입니다. 지역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데요. 제가 생각하는 지역사회 투석실에서 생각해야할 점을 적어볼까 합니다. 여기서 의학적인 내용은 제외했습니다.

 

 

 

 

 

"런닝메이트"

 

투석은 주 3회, 한 번에 4시간이 기본 세트로 되어있습니다. 원래 신장은 24시간 내내 일을 하지만, 신장을 대신하는 투석기를 24시간 내내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12시간을 투석기계로 빠르게, 강력하게 걸러내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투석환자분들을 일주일에 최소 3번은 만나게 됩니다. 가만, 우리 부모님은 언제뵈었더라... 먼 지방에 계신 부모님보다도 더 자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환자분의 표정만 봐도, 눈빛만 봐도 뭔가 이상하다, 불편해보인다... 이런 감이 딱 옵니다.

 

환자분 입장에서 생각해봅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투석 병원에 일주일에 세 번은 와야 합니다. 즉,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삶의 많은 시간을 투석실에서 보내게 되는 꼴입니다. 투석실은 또 하나의 집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오랜시간 지내야 하는 공간이 불편하면 안되겠죠.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투석을 받는 환자분들의 몸과 마음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석실을 올 때 너무 걱정이되면 안됩니다. 투석실 오는 것 때문에 잠을 못잘 정도로 불안하면 안됩니다. 걱정이나 불안감이 있다면,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어떤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또 너무 강압적으로 지시 하지 않습니다. 체중, 혈당, 식이조절 등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왜 안되는지, 뭐가 문제인지, 원인을 찾기위해 대화를 많이 합니다. 지적받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달리기를 한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흔히 달리기를 할 때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 이끌어주는 사람이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투석환자를 담당하는의사는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라기 보다 옆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달리는 자세가 괜찮은지, 달리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확인해주고, 지치지 않도록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대학병원에서 수련받을 때 숱하게 경험을 했지만,) 대학병원에 입원한 투석 환자분들의 경우 빨리 원래 다니던 지역투석병원에서 투석을 하고 싶다고, 빨리 퇴원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흔히 생각하기로는, 대학병원이라는 시설 좋은 큰 병원에 있는데, 많은 환자분들이 대학병원에서 투석하려고 줄서서 기다리는데, 왜 이분은 여기서 투석받기를 꺼려할까?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아마도 잘 안되는 부분을 자꾸 지적하고 혼내고, 강압적인 태도로 대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병원의 경우 단기적인 치료 목적으로 입원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치료적인 관점에서 더욱 엄격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기계나 로봇처럼 똑같을 수 없습니다. 식사량, 수분섭취량, 대변의 양이 매번 똑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 칠순잔치나 가족 생일잔치가 있어 평소보다 더 많이 잡수실 수도 있습니다. 또 중요한 회식을 빠질 수가 없어 본의아니게 식이조절이 안될 수도 있습니다. 투석환자들에게 있어 '또하나의 집'이나 다름없는 지역사회 투석실은 이러한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고려하고 이해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실 환자의 마음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건강입니다. 지역사회 투석실도 병원이기 때문에 그 환자분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안내해주어야 합니다. 특히 투석환자분들의 경우 지금 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미래에 좋지 못한 결과로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평상시 인이 높고, 부갑상선 호르몬이 높을 경우 지금 나타나는 증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부갑상선 호르몬이 뼈에서 칼슘을 빼내 뼈는 약해지고, 뼈 밖으로 나온 칼슘과 인이 만나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혈관과 심장에 쌓여 딱딱하게 만듭니다. 이런 과정이 5년, 10년 누적되면 혈관의 탄력이 떨어져 혈압변화가 심해지고, 심장도 두꺼워지면서 탄력이 떨어져 금방 지치고 숨이차며, 어느순간 심장마비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세 번, 자주 만나는 사이입니다. 오랜 시간 다져진 환자의 나쁜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만날 때 마다 건강을 위해 설득하고, 권유하며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설명하면 나중엔 결국 습관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당뇨가 있는 중년 여성분이었습니다. 당뇨가 있으면 신경 기능이 떨어져 투석 중 혈압 유지가 안되고 저혈압에 빠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특히 투석 전 체중이 너무 많이 늘어오실 경우, 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동안 많은 체중을 빼야하므로 혈압 저하는 더욱 심해집니다. 따라서 이런 분일수록 체중 관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환자분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매번 4kg 이상 늘어오셨습니다. 그러다보니 투석 중 혈압저하는 빈번했고, 혈압이 떨어지면서 구역/구토/복통/설사가 반복되었습니다. 아주 힘들어 했습니다. 하지만 야단치듯, 지적하듯, 정죄하듯 다그치면 죄책감을 느낄 것이고 투석실 오는 마음이 무거울 것입니다. 우선 그 분의 식이습관 중에 무엇이 문제인지 같이 의논하였습니다. 탐색을 한 결과 물섭취량이 지나치게  많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수 주에 걸쳐 식이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상의하고,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하였습니다. 현재는 2kg 대로 적절한 체중 증가량을 유지하고 있으며, 혈압저하 없이 안정적으로 투석을 하고 계십니다. 특히 구역/구토/복통/설사의 빈도가 많이 줄어 투석시간이 해피해졌습니다.

 

 

 

 

"마법의 기억력"

 

투석실에서 환자분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저는 정형외과나 소화기내과 의사가 된 느낌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환자분들은 근골격계의 증상이나 위장장애를 많이 호소하기 때문입니다. 투석실에서 투석만 할 것 같나요? 생각보다 진료의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다른 병원에 안가고 투석실에서 본인의 신체 건강 전체를 관리하려고 하십니다. 허허... 투석실에서 환자분들이 주로 호소하는 증상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허리가 아파요", "다리가 저려요", "어깨가 아파요", "무릎이 아파요", "잠을 못자요", "피부가 가려워요", "변비가 있어요" 등 입니다. 마치 투석과 관련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또 말기신부전과 관련된 증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분들이 호소하는 증상이 투석이나 콩팥과 관련된 것인지를 먼저 구별하고, 투석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이 들면, 여기서 해결을 해볼 것인가 아니면 자세한 검사와 치료를 위해 상급병원으로 의뢰를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환자가 호소한 증상이 비록 중요한 것은 아닐지라도, 다음 투석때 그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지, 계속 지속되는지, 새로운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확인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별거 아니었던 증상이 중요한 질환의 시작점일 수도 있고, 말기신부전의 합병증으로 나타나는 콩팥외 증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합니다.

 

만일 내가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쳐 아프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증상을 한 친구에게 하소연하듯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음날 나는 그 친구를 만나 밥을 먹는데, 어깨가 아파 온갖 인상을 쓰며 숟가락질을 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물어봅니다.

 

"어깨가 안좋아? 무슨일이야?"

"어제 사고 났었잖어"

"뭐? 사고났었어? 무슨사고?"

"....(헐... 분명 어제 사고났었다고 말했는데, 내 말을 완전 건성으로 들었구나!)"

 

어떻게 그걸 잊어버릴까 싶지만, 수십명, 수백명의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기억 못합니다. 이틀만 지나면 완전 백지가 되버리는 것 같습니다. 외래 진료실이라면, 컴퓨터 차트에 적어놓은 메모라도 볼 수 있으나, 투석실 회진 때 컴퓨터는 없습니다. 맨 몸입니다. (빠르게 청진, 촉진, 타진 등을 하려면 양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환자분들이 호소했던 증상이나, (투석과 관련이 있든, 관련이 없든 간에) 환자의 일상에서 중요하다고 느낄만한 증상이나 사건을 듣게되면, 회진 이 후 따로 메모를 해둡니다.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분명 내일 모레 기억을 못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환자별로 간단히 메모를 해둡니다. 그리고 다음 회진 전 간단히 적은 그 메모를 다시 읽어봅니다. 그러면 마법처럼 기억이 살아납니다. 회진 전후 각각 10분이면 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법의 기억력을 탑재하면, 회진때 인사말이 더욱 따뜻하게 바뀝니다.

 

"지난 주 김장하고 몸살났었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그 때 다친 발가락은 좀 어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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